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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 1938년 대구에 설립한 삼성상회를 시작으로 삼성그룹을 키워냈다. 생전에 금탑산업훈장,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고 사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특별 추서됐다. 폐암을 앓던 이병철 창업주는 1987년 11월19일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 : 매일경제DB] |
고(故)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생전에 오랜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삼성이라는 굴지의 대기업을 일궈낸 이병철 창업주가 마지막으로 뛰어든 사업은 바로 반도체다. 삼성은 이병철 창업주의 3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주도로 1974년 한국반도체를 50만 달러에 인수해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로부터 43년 전이다.
17일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3분기 매출은 165억 달러로 전분기 대비 15%,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텔의 매출은 159억 달러로 삼성전자는 인텔을 처음으로 누르고 세계 반도체 1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연간 실적도 삼성전자가 인텔을 앞설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에서도 메모리 분야에서 강자다. 세계 D램과 낸드 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모두 1위다. 앞선 기술력으로 수익성도 뛰어나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률은 올해 3분기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특히 D램의 영업이익률은 60%에 육박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처음부터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잘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 기술력이 10년 이상 뒤처져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반도체 인수 이후 트랜지스터 생산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생산품목을 갖추지 못했고 사업을 확대할 자금조차 부족했다. 삼성은 한국반도체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부로 흡수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반도체로 발령나면 퇴직하겠다는 직원이 나올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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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삼성전자] |
그러던 삼성은 1983년 2월 8일 '우리는 왜 반도체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언문을 공식 발표한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반도체사업이 시기상조라고 평가했지만 이병철 창업주의 마음은 확고했다. 선언문과 함께 64K D램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는 발표도 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기술력은 가전제품용 고밀도 집적회로(LSI)를 간신히 생산하는 단계에 불과했다.
또 1983년 기흥공장을 6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준공을 끝냈다. 늦은만큼 발걸음을 빨리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반도체사업부의 실적은 좋지 못했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누적 적자는 1159억원에 달했다. 지금 삼성전자의 매출 규모로 본다면 작은 규모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돈이다.
하지만 삼성의 반도체 사랑은 그럴 수록 더욱 강해졌다. 투자는 계속됐다. 64K D램과 256K D램을 경쟁사보다 늦게 시장에 내놨지만, 1992년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지 9년 만이고, 이병철 창업주가 1987년 11월19일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이다.
[디지털뉴스국 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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