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병원에 리베이트를 주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이 지난 8일 구속되면서 제약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리베이트 문제로 제약사 오너가 구속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지난 2010년 리베이트를 준 제약사뿐 아니라 받은 의사까지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했지만, 의료·제약계는 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며 리베이트 수수 관행을 이어왔다.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해 대부분 국가들은 약효가 강하거나 마약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약물은 의사 처방에 의해서만 사용하도록 한다. 약을 만드는 기업 입장에서는 의사가 자사 제품을 선택해줘야 물건을 팔 수 있다. 또 의약품 특허기간이 만료된 뒤 여러 제약사가 효능이 거의 같은 복제약을 잇따라 내놓으면 의사의 선택지는 더욱 많아진다.
제품 자체로 차별화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제약사가 선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뇌물이다. '리베이트'라는 단어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의약품 처방액에 비례해서 되돌려주는 현금 외에 영업사원들이 주는 접대성 금품·편의도 상당하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던가. 취재 중에 만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약효가 거의 비슷한데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는 사람이 파는 약을 처방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난 2010년대 초 제약업체 영업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내 직종을 바꾼 A씨(34)는 "처방액의 일정 비율로 의사에게 현금을 줬다"며 "사용량이 많은 내과질환을 치료하는 약의 경우 리베이트를 주는 비율이 최대 30%에 달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처음 병원을 여는 개원의들은 리베이트 이외 금품·편의를 받는 주요 대상이다. 한 번 영업망을 뚫어 놓으면 꾸준히 처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보통 병원 내부를 꾸밀 소파, 텔레비전 등 비품을 사줬다고 A씨는 전했다.
그는 "당시 제약업계 순위 20위권 밖에 있다가 지금은 최상위권으로 도약한 제약업체 역시 리베이트·접대로 사세를 키워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며 "그 회사 영업사원들은 개원의에게 줄 자동차 키를 갖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제약업체 리베이트 문제가 주목받자 세련된 방법이 등장했다. 약물의 효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학회를 열고 발제자로 나선 의사에게 강사료 명목으로 현금을 주는 게 그것. 이 같은 학회 진행을 대행해주는 업체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학회를 활용해 의사를 접대하는 방법도 지난해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사용하기 곤란해졌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교육 공무원으로 분류돼 1회 강사료를 50만원 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약업체 관계자는 "이제 남은 방법은 감성마케팅 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감성마케팅이란 의사의 의료행위 이외 생활을 제약사 영업사원이 직접 나서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의사가 여행할 때 동행하거나 심지어 의사 자녀가 등하교할 때 운전기사를 자처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에 대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처방권을 놓고 의사와 약사 사이에서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약사 사회는 예전부터 의약품 재고 문제와 환자의 처방약 구입 편의를 근거로 의사는 성분명으로 처방하고 어떤 회사 제품을 사용할지는 약사가 결정하는 성분명 처방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의사 사회의 반발로 번번히 무산됐지만 최근 서울시약사회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성분명처방 도입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정부가 리베이트를 막을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성이 있는 약의 특허기간이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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