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묻히는 26조…채권 소멸시효 완성되면 어차피 못 돌려 받아서?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이른바 '죽은 채권'으로 불렸습니다. 금융회사가 빚 독촉을 포기함으로써 채무자에게 상법상 '시효의 이익'이 생긴 것입니다.
그럼에도 금융회사들은 지금까지 죽은 채권을 땅에 묻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자발적으로 갚을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 빚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도 포기했다는 내부 책임론 등이 이유였습니다.
금융위원회가 31일 죽은 채권을 소각하기로 한 것은 이처럼 관행적인 부실채권 관리 업무를 더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을 포함했습니다.
채권·채무관계의 소멸시효는 5년입니다. 그러나 5년이 가까워지면 금융회사는 별다른 고민 없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0년 단위로 연장, 재연장이 이뤄져 왔습니다.
통상 25년까지 연장돼도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금융회사는 채권 추심을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효가 완성된 금융회사의 채권은 공공·민간을 합쳐 214만3천 명, 25조7천억 원입니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이 소각되면 불법 채권 추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원칙적으로 채권 추심이 금지되지만, 이를 넘겨받은 채권추심업체가 시효 이후에도 불법 추심을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금융위가 이날 소개한 한 피해 사례에서 A 씨는 한 채권추심업체가 "일부 선납금만 납부하더라도 원금을 대폭 감면해준다"는 안내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미끼였습니다. A 씨의 일부 변제는 빚을 갚겠다는 의사로 간주해 채권·채무 관계는 되살아났고, 그는 혹독한 빚 독촉을 다시 받게 됐습니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소각으로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로 농업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B 씨의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됐습니다.
그러나 최근 금융거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해당 금융회사를 찾아간 B 씨는 "과거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갚을 필요는 없지만, 해당 연체기록이 여전히 남아있어 신규 거래는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채권 추심은 받지 않지만, 금융회사 전산원장에 '소멸시효 완성'이라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소각으로 그에 대한 기록은 '채무 없음'이
금융위는 이 같은 실질적인 효과뿐 아니라 채무자의 심리적 부담감을 완전히 해소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회수율이 지극히 낮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굳이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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