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원전의 운명을 결정지을 공론화 과정이 '블랙홀'에 빠져 버렸다.
공론화 과정을 공정하게 설계·관리해야 할 공론화위원회와 탈원전을 밀어 붙이고 있는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론화 과정이 정부가 당초 약속한 대로 3개월 안에 끝날 수 있을 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론화위는 지난 27일 "공론조사는 찬반 의견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공론조사 참여자의 의견 변화 과정을 조사하고 일정한 합의안을 만들어 정부에 권고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당초 정부가 밝혔던 시민 배심원단에 의한 찬반 결정 계획을 공론화위가 출범 4일 만에 뒤집은 것이다. 공론조사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정부에 제공하는 역할만 하겠다는 것으로 최종 결정은 대통령 등 정부에게 넘긴 셈이다.
이에 대해 28일 청와대는 "공론 과정에서 찬반이 결정될 것"이라며 "공론 수렴 과정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든 청와대는 그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청와대 입장은 전날 벌어진 공론화위와 정부 간 혼선을 바로 잡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론화위 최종 목표는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나게 하는 것"이라며 "현재 위원회가 초창기라 공론조사 방식에 대해 논의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밝혔다. 꼭 시민 배심원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을 통해 결론을 낼 것이란 게 청와대 시각인 셈이다. 이 관계자는 "찬성이냐 반대냐로만 결론낼 지, 아니면 제3의 안까지 포함할 것인 지는 공론화위에서 논의할 것"이라며 "찬성이든 반대든, 제3의 안이든 결론이 나면 청와대와 정부는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위원회 소속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전날 공론화위의 발언은 정부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공론화위는 법적 절차에 대한 권학과 책임이 없기 때문에 공론화위는 여론 수렴과 민주적 절차를 밟아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고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론화위의 뒤집기는 전날 2차 회의 직전 열린 갈등 해결 분야 전문가 간담회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서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공론조사는 원전 건설 중단에 대한 찬반 결정이 아닌 선택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린 단국대 교수도 "공론조사에서는 여러 대안을 제시해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하다"며 "공론조사 결과가 최종 결정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공론화위가 전혀 갈피를 못 잡는 것이 탈원전을 강행하려는 청와대 눈치를 보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날 2차 회의 결과 발표 직후 논란이 확산되자 이희진 공론화위 대변인은 추가 브리핑을 열고 "오늘(27일) 청취한 전문가 의견을 참고로 향후 추가 논의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미지 (찬반 결정을 안 내리고 권고만 하기로 한 게)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결국 다음 회의에서 또 다시 바뀔 수도 있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계속 될 전망이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 건설 중단 공론화를 결정한 지 한 달이 넘었고, 공론화위가 출범한 지도 5일이 지났지만 방식조차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시내 한 대학의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 정도면 공론화위가 신중을 넘어 우유부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며 "우려했던 대로 9명 위원들이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최종 결정을 정부에 떠넘길 궁리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무회의 의결과 행정명령만으로는 원자력안전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원전의 '일반적' 위험성 때문에 공사를 영구 중단시킬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 역시 지난 24일 "공론화위 논의 의제는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멈출지 말지에 대한 의견 수렴이며, 그 결과에 따라 입법을 위한 논의가 필요할 때가 올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영구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국회를 통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출범 초기부터 삐꺽대면서 신뢰성이 떨어진 공론화위 대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고리 5·6호기 영구 중단 또는 공사 재개를 결정
[고재만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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