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방안이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가제에 포함되며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자율로 안될 경우 정부가 강제로 비정규직 사용을 막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보다 훨씬 강력한 제도인 만큼 정부가 도입을 밀어붙일 경우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은 비정규직으로의 진입통로를 강제로 틀어막는 강력한 제도다. 상시·지속 가능하거나,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에 대해선 정규직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는게 핵심이다. 이 제도는 문재인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도입 검토 의사를 밝히면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기존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제도 도입을 위해선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사유를 명기하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다, 사용이 제한되는 비정규직 범위와 기업에 대한 제재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재계과 야권의 반발을 뚫고 정부가 급하게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비정규직 감축 로드맵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 결국 제목을 올렸다. 정부가 20일 "기간제법 개정 등 법·제도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제도 도입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는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향후 정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모든 직원을 사실상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압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비용부담이 늘어 오히려 전체 채용 규모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정부 눈치가 보여 부담을 감수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고용 형태가 획일화되면 일자리 확대보다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까지도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은 논란이 많아 입법화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용사유 제한으로 기업이 굳이 정규직화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일자리는 자연스레 고용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용사유제한을 도입한 선진국이 많지 않다는 점도 반대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18개국은 사용사유제한이 없다. 12개국은 비정규직을 사용할 때 객관적인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 현황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53.1%는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택했다. 자발적 사유의 주된 내용을 보면 '근로조건에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0.3%로 가장 높았다. 노동계나 여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비정규직이 불행하거나 비자발적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른 관계자는 "모든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만들면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일자리의 종류와 형태는 점점 더 다양해 지는데 모든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이에 대해 국정기획위 관계자는 "국정과제에 포함됐다는 자체가 강압적인 추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이 제도를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은 향후 비정규직 정책의 목표와 원칙을 보여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전정홍 기자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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