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원자력 발전소의 운명을 결정할 공론화위원회가 이르면 24일 출범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미 정부가 탈(脫)원전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는 상황이어서 공론화위가 공정성을 지킬 수 있을 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원전 전문가로 구성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0개월 격론 끝에 건설을 결정한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고작 3개월 만에 '인기투표'식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논란도 일고 있다.
18일 정부 등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공론화위원회 위원 선정을 위해 찬반 양측 대표단체로 정한 한국원자력산업회의(원산회·건설 중단 반대 쪽)와 핵 없는 사회 공동행동(찬성 쪽)을 대상으로 위원 후보 20명에 대한 제척 의견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공론화위 위원은 위원장 포함 9명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 이외에 8명은 인문사화·과학기술·조사통계·갈등관리 등 4개 분야에서 각각 2명씩 선정한다. 국무조정실은 제척 의견이 제시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에 대한 인사검증을 거쳐 조만간 공론화위 구성을 마칠 예정이다. 이르면 24일께 공론화위가 정식 출범돼 3개월 간 활동에 들어간다.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갖지는 않지만, 출범 후 3개월 동안 공론화 과정을 설계하고 관리한다. 최종 판단은 시민 배심원단이 내리게 되며, 이들에 대한 구성 방식과 의사결정 방식 등은 공론화위가 결정한다.
그러나 공론화위가 출범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건설 중단 반대 쪽 대표단체로 선정된 원산회의 이사진 대부분이 정부 또는 정부 영향 아래 있는 공공기관 소속이기 때문이다. 원산회 회장은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다. 이 사장은 이미 지난 14일 한수원 이사회에서 정부 방침에 따라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한 바 있다.
이 사장은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에서 "공론화 기간 중 영구 중단을 막기 위해 최대한 설득하겠다"면서도 "공기관인 한수원은 정부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공기업의 역할"이라고 말해 정부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시인했다. 실제 원산회의 15명 이사 중 11명은 정부와 공공기관 소속이다. 개인적으로는 원전에 찬성한다고 해도 이미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비전문가들의 결정에 맡기는 것에 대해서도 객관성과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독일은 20년, 스위스도 비슷한 기간 동안 여러 전문가와 탈핵 찬반 양쪽 의견 개진을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며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비전문가인 시민 배심원단이 책임질 수 있는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주 교수는 이어 "국회 등에서 충분한 기간 동안 전문가 참여와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공론화를 진행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이 결정되자마자 법적·절차적 근거 마련을 위해 공론화위 구성과 운영 등 내용을 담은 국무총리 훈령을 지난 17일 관보에 게재했다.
관보에 따르면 공론화위는 분과위원회, 공론화지원단, 자문위원 등을 둘 수 있다. 분과위원회는 위원회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위원회에 별도 구성한다. 공론화지원단은 국무조정실 소속 일반직 고위공무원 중 1명을 단장으로 두고, 필요한 경우 관계 부처와 그 밖에 관계기관·단체 등에서 공무원·임직원이 파견돼 위원회 지원 실무를 담당한다.
정부가 공론화위에 원자력 관련 전문가를 포함하지 않겠다고 한 데 대해 전문성 논란이 일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 중 자문위원을 위촉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할 길이 열렸다.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 공론화에 관한 주요 사항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 공론화 관련 조사·연구에 관한 사항 △국민 이해도 제고 및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활동에 관한 사항 △그 밖에 위원장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 공론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을 심의·의결한다. 위원장을 포함한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회의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위를 구성해 여론수렴을 거쳐 시민배심원단이 최종 결정하도록 했다.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공사 일시 중단을 의결했다.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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