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대금이 3주 정도 밀렸어요. 중국에 진출한 뒤로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3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현대자동차의 중국합작법인 베이징현대차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중국에서 '사드 역풍'을 맞고있는 현대차의 피해도 피해이지만 1,2차 협력업체들의 한숨도 땅이 꺼져내릴 지경이다. 한중간 사드 갈등이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현지 진출 기업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위기는 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뒤 15년만에 최악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내 반한 정서의 희생양이 되다보니 어디 억울하다고 하소연할데도 없다.
중국 포털 소후망의 자동차정보에 따르면 지난 5월 중국 자동차시장에서 베이징현대와 둥펑웨다기아의 판매량은 각각 3만5000대, 1만7000대에 그쳤다.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65% 금감한 수치다. 6월 역시 비슷한 판매량을 보여 전년 동월 대비 63%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드 한반도 배치가 확정된 3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반토막나더니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연속 판매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중국 현지 업계에 따르면 베이징현대는 중국시장에서 지난해 연간 114만대를 판매해 7.5% 성장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들어 롯데가 성주골프장 부지를 제공하고 사드장비 반입이 본격화된 뒤 상황이 돌변했다. 1월 7만6000대를 정점으로 이후 5개월 연속 판매가 급감하고 있다.
현대차는 '울며겨자먹기'로 이 기간 차값을 평균 2만위안(약 340만원) 이상 인하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가격경쟁력과 다양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내세운 중국 토종 브랜드들이 현대·기아차의 판매감소분을 흡수했다. 일부 토종업체들은 현대차 구매자가 계약을 파기하고 자사 자동차를 구입할 경우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소위 '애국 마케팅'까지 펼쳤다. 다른 브랜드들은 최근에는 악의적인 사드 마케팅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대대적인 판촉 활동 보다는 각 딜러별로 음성적으로 한국차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베이징현대차는 올해 판매목표(125만대)를 달성할 수 없다고 보고 이미 목표치를 하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올해 중국 시장 판매량은 100만대도 어려울 듯 하다"며 "작년 중국에서 현대·기아차 합산해 글로벌 판매량의 22.7%인 179만대를 팔았는데 이런 상황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베이징현대차는 자구책으로 최근 중국내 자동차부품 업계에 대한 개방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동반진출한 협력사뿐 아니라 현지기업의 부품을 적극 구매해 현지화 전략으로 반한 정서를 뚫어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토종브랜드의 공세에 일본 자동차업체들까지 최근 중국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 현대·기아차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다. 토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자동차는 엔저를 활용한 저가정책과 SUV 등 라인업 확대를 통해 올들어 중국시장에서 두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에도 둥펑혼다는 전년대비 24%에 달하는 판매성장률을 기록했다.
오는 7~8일 독일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기간 또는 8월말 한중수교 25주년을 즈음해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지만, 사드 갈등이 단번에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중국은 사드배치 연기가 아닌 철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사드가 해결되도 현대차의 중국 사업 정상화는 적어도 1년이상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판매 부진으로 현대차의 판매망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차를 팔던 딜러들이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베이징현대차의 한 딜러는 "가격을 할인한다고 해도 반한 감정 때문에 차가 팔리지 않는다. 차를 팔아야 성과금이 나올텐데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딜러들이 다른 자동차 회사로 이직하고 있다"며 "주로 일본 자동차 회사 쪽으로 많이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서울 = 우제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