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서울 언론진흥재단 19층 한국기자클럽에서 노동운동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를 인터뷰할 당시, 문 전 대표는 한 권의 책을 들고 나왔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와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공저한 <다중격차, 한국사회 불평등 구조>였다. 그는 "우리나라는 대·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세대 등 각 영역에서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노동계가 책임있는 자세를 가지고 격차 해소를 위한 재원의 3분의 1을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재계뿐만 아니라 노동계도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단문심'(단병호/문성현/심상정)으로 불리며 금속노조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한 1세대 노동운동계 대표주자다. 올해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역임했던 그에게 문재인 정권 시기 노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이하 일문 일답
― 1987년 이후 지난 30년 노동운동을 평가한다면
▷상위 10%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는 노조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노동운동의 성과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조차 못하는 90%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금속노조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산별노조를 통한 임금격차 해소, 사회연대임금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내부 반발로 인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심각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 우선 정권이 교체된 만큼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가용가능한 재정을 통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신규 채용을 늘려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 구조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청의 지불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카드수수료를 낮추거나 재정지원을 통해 중소·영세사업장이 최저임금 상승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등 복지도 늘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소비성향이 높은 취약계층 구매력이 증진되면서 내수가 활성화되는 소득주도성장을 할 수 있다.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산시켜야 된다.
― 그 과정에서 노동계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동계는 여러 제약조건이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너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요구해선 안 된다. 가령 민간부문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하는데 어림잡아 100조원이 든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역시 15~20조원이 든다. 근데 이 중 60%는 중소·자영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각 중소기업별로 지불능력이 다른데, 과도하게 밀어붙이기식으로 나서면 안 된다. 앞으로 노동계는 노동현안 해결에 '책임있는 자세'로 참여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노조에 끌어들여야 한다. 기업별 노조보다는 산별 노조로 나아가 연대임금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임금격차를 줄이고 연대임금을 하는 방향으로 노동계가 나아가야 한다. 성과급을 반납한 공공노조, 향후 인상분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밝힌 보건의료노조가 대표적인 모범사례다. 궁극적으로는 노동계가 먼저 나서서 자신의 월급을 내놓아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재원을 기금을 조성하고, 정부와 재계에게 각각 3분의 1씩을 달라고 해야 한다. 솔선수범과 진성성이 중요하다.
― 자신의 월급을 기금으로 내자고 하면, 노동계 반발이 클 텐데?
▷노동자가 임금의 1%를 걷으면 3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가가 각각 비슷한 규모를 만들면 벌써 10조원 가량이 된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면, 노동자들의 자식이 혜택을 보게 된다. 세대가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공정한 경제질서를 만들어 정규직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게 되면, 굳이 월급을 거둘 필요가 없다. 이같은 고통분담은 '영구적'이 아니라 '한시적'인 것이다.
― 그러나 최근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번 총파업은 말이 총파업이지 집회나 다름없다. 구호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등 현재 공약과 맞닿아 있다.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노동계 내에서도 점점 투쟁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많다. 나도 감옥을 6번이나 갔다온 사람이다. 싸움을 많이 해 본 사람이 싸움 안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제일 많이 고민하는 법이다. 이제는 투쟁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노사가 서로 합심해서 임금격차 등을 풀어나가야 한다. SK 해운이 비정규직을 끌어안으며 상생하는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대신 이들의 호봉을 2등급 낮추자는 것으로 타협을 본 사업장도 있다. 이처럼 사측과 같이 대화하고 협의해나가면서, 노사 양측이 서로 신뢰를 쌓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노사 상생협력은 각 사업장별로 상황이 너무 달라 정답이 없다. 여러 상생 사례를 많이 만들고,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홍보해야 한다.
― 그렇다면 재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재계도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지만, 일자리 창출만큼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국내에 투자를 많이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은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대기업은 독점을 지양하고 중소기업에 이익을 나눠야 한다. 보다 탄탄한 중소기업이 많이 만들어져, 이들의 지불능력을 높여야 한다.
― 향후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인가?
▷ 노동운동은 합리적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 1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는 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진보의 세대였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진보는 '합리적'이어야 하고, 보수는 '개혁적'이어야 한다. 진보는 현실적 제약을 인지하고, 너무 과도한걸 요구하기 보다는 하나하나 바꿔나가려고 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민간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굵직굵직한 현안은 1~2년 이내 이뤄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지난한 과정이 있지만, 방향성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보수 역시 낙수효과를 고집하지 말고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양 극단이 아닌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주축이 되서, 서로 대화하고 타협해 나가야 한다.
또한 산별노조를 강화해야 한다. 기아차 노조가 비정규직 조합원의 자격을 박탈한 것은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다. 산별연대를 강화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거 끌어들여야 한다.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논쟁을 붙이면 임금 구조가 하후상박으로 가면서 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 문재인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지금은 과거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와 비슷하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통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거 늘렸다. 그리고 와그너법을 만들어 노조결성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했다. 노동시간을 규제했고, 아동노동을 금지했다. 다만 노조에게 임금격차를 해소하라는 사회적 숙제도 내줬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시기를 종식시키고, 불평등을 완화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세계적인 석학들의 이야기다. 촛불민심 역시 노동시민권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대로 소득주도 성장,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 문성현은 누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71학번으로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란 말을 남기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 사건에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다.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6 차례 감옥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금속노조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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