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현대·기아자동차의 12개 차종 23만8000여대에 대해 사상 최초로 강제리콜 명령을 내렸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등에 따른 글로벌 판매부진 속에 품질 논란까지 확대되는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셈이다.
12일 국토부는 현대·기아차에 대한 결함 5건을 확정하고 결함 시정명령을 내렸다. 현대차 측은 지난달 25~26일 국토부의 5건의 리콜 권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지난 8일 열린 청문회에서 "위험이 과장됐다"고 소명했지만 국토부가 5건을 모두 기각한 것이다. 국내 자동차회사가 국토부의 리콜 권고에 이의를 제기해 강제리콜 명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대차 제네시스(BH)와 에쿠스(VI)의 경우 캐니스터 결함이 발견됐다. 캐니스터는 연료가 증발할 때 나오는 가스를 모으는 장치인데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시동 꺼짐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기아차 모하비(HM)에서는 주행 도중 허브 너트가 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지적됐다. 허브 너트가 풀리면 주행 도중 타이어가 차체에서 이탈할 수 있다.
현대차 아반떼(MD)와 i30(GD) 에서는 브레이크 파이프 결함이 문제가 됐다. 이 경우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자동차가 곧바로 서지 않고 밀려날 수 있다. 이 밖에 쏘렌토(XM), 투싼(LM), 싼타페(CM), 스포티지(SL), 카니발(VQ) 등에서는 연료 호스가 손상돼 차량 화재 위험성이 제기됐다. 쏘나타(LF)와 쏘나타LF 하이브리드, 제네시스(DH) 등은 주차 브레이크 경고등이 켜지지 않아 주차브레이크가 걸린 채 차가 운행될 수 있다는 결함이 지적됐다.
현대차는 앞으로 25일 이내 국토부에 리콜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며 또 30일 이내에는 리콜계획을 신문에 공고해야 하고 자동차 소유자에게 우편으로 통지해야 한다. 결함이 발견된 자동차 모델별로 정확한 생산연도는 리콜 계획서가 나올 때 확정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당초 "위험이 과장됐으며 무상수리로 대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일부 청문위원도 청문회에서 "모하비 너트 풀림 현상은 강제리콜 대상에 해당할지 애매하다"는 의견서를 제시했지만 결국 5건 모두 강제리콜이 결정됐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현대차가 의도적으로 제작 결함을 은폐한 의혹이 있다"며 이례적으로 검찰에 수사까지 의뢰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은폐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은폐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기에 고발이 아닌 수사 의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리콜은 현대차그룹에는 큰 악재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우리나라와 북미에서 그랜저, 쏘나타, K7 등에 들어간 세타2엔진 147만대를 리콜하는 등 품질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내 최초 강제리콜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초 역대 최대인 825만대를 판매목표로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올해 4월까지 글로벌 판매량은 232만3234대로 오히려 전년 동기(246만7026대) 대비 5.8% 감소했다. 사드 배치로 중국 시장 4월 판매량은 3분의1 토막이 났고 미국에서는 브랜드 간 경쟁에서 밀려 점유율이 지난 해 8.1%에서 올해 7.6%까지 떨어졌다.
국내 상황도 좋지는 않다. 현대·기아차 내수 판매량은 지난달까지 38만7645대로 전년 동기 39만6957대에서 2.3% 가량 빠졌다. 이때문에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임원 연봉을 10% 삭감하는 비상경영 체제가 올해 지속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현대차는 국토부의 리콜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 동안 차량 개발, 생산, 판매, 사후관리까지 철저한 품질 확보에 만전을 기해왔다"며 "앞으로도 고객의 관점에
이와 함께 이달 말 출시할 프리미엄 세단 '스팅어'와 6월 내놓을 현대차 최초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 등 신차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계획이다.
[우제윤 기자 / 세종 =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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