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 화장품 수출을 추진중인 A업체 대표는 "몇 년간 공들인 게 물거품이 될까봐 요즘 잠이 안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고도방어미사일(THADD·사드) 갈등을 의식해 최대한 조용히 허가절차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화장품 제조에 사용하려던 생물자원과 관련된 사항도 검토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대기업이야 회사 법무팀이나 특허법인 등을 통해 대응하겠지만, 우리같은 작은 회사들은 어디로 찾아가야 할지도 암담한 상황"이라며 "건강기능식품이나 천연물 관련 회사 대표들 중에는 '생물자원 로열티'는 처음 듣는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사드를 빌미로 한 중국의 무역보복,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의 역습···'
가뜩이나 녹록지 않은 우리 기업들의 경영 환경에 또 하나의 복병이 나타났다. 하반기 발효 예정인 나고야의정서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 유전자원을 활용하여 생기는 이익을 자원 제공국가와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생물자원 보존에 기여한다는 취지(접근 및 이익공유·ABS)의 국제 협약이다. 2010년 일본 나고야 총회에서 채택되고 2014년 10월 평창 총회에서 발효된 이래, 올 3월까지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196곳중 유럽연합(EU)을 포함한 96개국이 비준을 받았다.
◆"중국, 사드 보복에 악용할라" 우려도
우리나라도 지난달 2일 나고야의정서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고, 현재 하위법령이 입법예고중이다. 이 과정을 마치고 UN대표부를 통해 UN사무총장에게 비준서를 기탁하면, 90일 후 한국에서도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된다. 식물, 동물, 곤충은 물론 천연물과 바이러스, 미생물 등도 이익공유 대상이다. 생물자원에 일종의 '국가적 재산권'이 생긴 것이고, 의약품과 화장품·건강기능식품 등 해외 생물자원을 활용하는 산업분야에 새로운 '특허 장벽'이 생기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나고야의정서 발효가 '환경 문제'가 '경제 통상 문제'로 확대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당장 우리와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협상중인 에콰도르가 생물(바이오)자원의 사전이용 허가와 이익공유 부분을 조문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에콰도르는 작년 6월 자국 5대 생물해적행위국가로 미국, 독일, 네덜란드, 호주와 함께 한국을 지목한 바 있다. 자국의 유전자원에 대한 특허를 가장 많이 신청한 국가를 겨냥한 것이다. 에콰도르보다 더 걱정되는 나라는 우리 기업들이 가장 많은 생물자원을 수입하는 중국이다. 중국은 작년 6월 의정서 비준을 완료하고 국무원에서 관련 법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의 이익공유 요구 수준은 인도 사례를 참고해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는 내국기업과 외국기업에 이익공유 비율 차등을 두는데 대략 1~3% 정도로 명시하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은 국제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사드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 이를 교묘히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즉, 이익공유를 철저히 요구한다거나, 의약품이나 식품·화장품 업체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린다거나 하는 '합법적 보복'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같은 조치가 제3세계나 다른 자원부국의 공감대를 일으키는 경우,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크게 느낄 수 있다"면서 "이런 시기에 생물자원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 서둘러 조기 대응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10곳중 6곳 "대응 계획 없다"
생물자원의 특성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 뚜렷한 기준도 세우기 어렵다. 정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추정 피해규모는 약 500억에서 4500억원까지 천차만별이다. 허인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박사(법제연구팀장)은 "우리 기업들이 어디서, 얼마만큼의 생물자원을 가져오는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관련 통계가 나와야 기본 계획을 세우면서 부족한 부분을 지원하고 대책을 세우든가 할 텐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마 제도가 시행되면서 통계 수치가 확보되면 좀더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관련 업체들은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과 바이오협회가 작년 136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기업은 0.7%에 불과했다. '현재 계획 없음'이 54.4%로 가장 많았고 '동종업계 동향 주시 중'이 36.8% '대책 마련중'이 8.1%였다. 정부 차원의 효과적인 지원 방식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58.1%)이 정보공유체계 마련을 꼽았다. 그만큼 관련 정보에 목마르다는 뜻이다.
환경부는 정보서비스센터(www.abs.go.kr), 미래부는 ABS 산업지원센터(www.abs.kr)를 통해 나고야의정서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는 28일에는 관련부처들과 함께 나고야 의정서에 관한 대규모 설명회를 준비중이고, 해외 관련법을 공유하기 위한 국제심포지엄 등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정 발효 전 개별 기업들의 사전준비도 중요하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정책개발지원본부 본부장은 "생약 성분을 많이 쓰는 천연물의약, 건강기능식품과 시장 규모가 큰 화장품 등이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이지만, 기업별로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파급효과를 예상하기 어렵다"며 "당장 지금부터 우리 회사가 사용하는 물질이나 개발방식이 이익공유 대상에 해당하는지, 원가상승 부담은 어느 정도인지, 다른 대체제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들은 나름 체계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한 곳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15년부터 나고야의정서에 대비하는 태스크포스(TF)를 결성하고, 관련 국제동향을 모니터링하고 법규 변동사항을 예측하는 한편 다른 기업들의 대응을 지켜보는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이고 근본적 대안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자사가 권리를 갖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원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토종 생물과 특이생물 유전자 복원 등이 주요 대상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업계 전반적으로 로열티 지불가능성에 의한 금전적 비용, 원료수입 절차가 늘어나는 만큼 시간적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응팀을 꾸려 면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발효 이후에도 실제 적용까지는 유예기간을 두는 게 보통이므로 '실제 적용'은 빨라야 내년이 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나라별·기업별 맞춤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 적극적인 대응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바이오기업들의 대응을 총괄하는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환경부를 중심으로 지난 6년간 바이오협회에 나고야의정서 사무국을 마련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에 힘썼지만 한정된 예산과 인력때문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이제 시행을 눈앞에 둔 만큼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병희 국립생물자원관 보건연구관은 "나고야 의정서의 취지가 이익을 공유해 생물다양성을 보존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막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큰 돈을 지불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물자원을 수출하는 제공국과 활용하는 이용국 사이에서는 가치를 창출하는 이용국이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김순웅 정진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우리 기업들이 해외나 자사 제품을 출시할 때, 특허침해는 아닌지 반드시 점검하는 것 처럼 나고야 의정서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면서 "그 나라 ABS관련 법규를 들여다보고 이익공유를 부담할 것인지, 재료를 바꿀 것인지 등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생물유전자원과 관련된 발명인 경우, 특허를 낼 때 원재료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 밝히라고 요구하는 나라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대표적"이라며 "이를 밝히지 않으면 특허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이미 잘 팔고 있는 제품의 원료 출처를 문제삼아 특혀 방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도 나올 수 있으니 대비를 해둬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 교수도 "범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과 해외규제 조기경보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한발 앞선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중국 등 자원부국
[신찬옥 기자 /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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