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조원 vs. 17조원' 해프닝은 정부의 비밀주의와 부처간 장벽이라는 해묵은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 처리를 놓고 금융위원회와 채권단은 주요 수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파산땐 59조원 손실'이라는 공포마케팅을 펼쳤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주요회의때마다 불성실한 자세를 보이면서 결국 '17조원'이란 숫자가 외부로 흘러나오도록 방치해 불필요한 논란만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해 6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게된 콘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사실상 중재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앞서 금융위와 산업은행은 회계법인 삼정KPMG와 법무법인 태평양을 통해 다양한 가정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피해규모와 신규자금을 분석했지만 외부에는 일체 공개하고 유독 '파산땐 59조원'이란 숫자만 강조해 왔다.
전통적인 법정관리나 P플랜(사전회생계획안제도·Pre-packaged Plan)을 거쳐 많게는 40척이 선주의 요청에 따라 계약취소 사태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대우조선이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지난해 법정관리에 돌입했지만 선주 요청에 따른 계약취소 및 그에 따른 은행의 선수금환급청구(RG콜) 손실 부담은 '제로(0)'였다. BP시핑 등 선주사의 저가발주가 극심해 STX조선해양이 자체적으로 계약취소를 요청해 RG콜 부담을 은행이 떠안은 경우는 일부 있었다.
다른 업종의 경영정상화 방안과 달리 법정관리에 따른 구조조정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RG콜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따른 계약취소 사유로 법무법인 태평양은 최대 40척에서 이같은 RG콜 사유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금융위와 산업은행마저도 전통적인 법정관리와 달리 신규자금지원을 전제한 P플랜의 경우 이 규모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 '법정관리'는 사실상 '파산'과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금융위와 산업은행이 이번 3·23 경영정상화 방안 무산에 따라 법정관리의 일종인 P플랜에 들어간다는 '배수진'을 치기 전까지는 대우조선해양의 법정관리를 반대해왔고, '법정관리=파산'이라는 주장에 침묵해왔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돌입하기 전에도 "파산 수준의 국가경제적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발표를 공식·비공식적으로 되풀이한 전례가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정관리만 가면 파산이 될 것처럼 공포마케팅에 열을 올리던 금융위가 이제와서 법정관리와 파산을 구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금융위가 그간 자율협약, 워크아웃 등 금융위 주도 구조조정에 대한 미련을 보여왔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요 결정을 놓고 오랜기간 갈등해 온 금융위와 산업부는 3·23 경영정상화 방안 결정을 앞두고 폭발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31일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 나흘 전인 같은 달 27일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주 장관은 맥킨지 보고서를 토대로 빅3 체제를 '2강 1중' 체제로 재편하자고 주장한 반면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빅3 체제 유지를 고집했다. 결국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은 금융위의 의견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지난 3월 23일 발표를 앞두고는 주 장관이 참석해야 할 두 번의 회의에 모두 불참해 관가에서는 금융위 주도의 구조조정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비공개 장관 회의가 열린 지난 21일 주 장관은 제9차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조찬 모임 외에는 특별한 공식 일정이 없었지만 결국 회의에 불참하고 정만기 산업부 1차관이 대신 참석했다. 이어 23일 열린 제11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는 국회 산자위 참석 때문에 불참했다는 게 산업부 측 해명이다. 산업부는 지난 19일 분과 회의 때도 차관 대신 실장급이 참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위는 산업부가 비협조적이라고 생각하고, 산업부는 금융위가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을 살리기 위해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고집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두 부처간 엇박자가 계속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부처 입장을 교통정리해야할 공식적인 권한을
[고재만 기자 / 정석우 기자 / 김세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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