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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벌에 의해 이동한 꽃가루를 바탕으로 9세대에 걸쳐 큰 식물(왼쪽)과 꽃등에로 이동한 꽃가루에서 역시 9세대로 성장한 식물(오른쪽). 호박벌에 의해 이동한 꽃가루로 큰 식물의 진화력이 훨씬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진 제공=취리히대> |
1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따르면 스위스 취리히대 소속 연구진은 꽃가루 매개체와 식물 생장·진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은 햇볕과 토양 등 기본 환경을 동일하게 제어한 뒤 꽃가루 매개체만 달리 해 성장 변화를 추적했다. 온실에서 키운 실험 대상은 '브라시카 라파'라는 이름의 식물로 순무나 배추, 청경채와 같은 과다.
꽃가루 매개체는 3가지로 나눠 살펴봤다. 브라시카 라파의 꽃가루를 주로 옮기고 다니는 호박벌(bumblebee), 그리고 모양은 꿀벌과 비슷하지만 파리목에 속하는 곤충인 꽃등에(hoverfly)를 내세웠다. 나머지 하나의 매개체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손으로 직접 꽃가루를 채취해 수분시키는 것이다.
실험 결과 호박벌이 꽃가루를 옮겨 자라난 브라시카 라파의 경우 사람 손으로 수분시켰을 때보다 줄기가 더욱 길어 키가 크고 자외선 색을 많이 띠며 향 또한 강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꽃등에가 꽃가루를 이동시켜 자란 브라시카 라파는 사람 손으로 수분시킨 경우보다 줄기 길이도 작고 향기 또한 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는 단 한번의 수분만으로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연구진은 9~11세대에 걸쳐 각 매개체에 의해 이동한 꽃가루에 따라 브라시카 라파의 성장을 추적했다. 최소한 9번 이상의 수분 이후 나타난 브라시카 라파의 성장에서 꽃가루 매개체마다 성장률이 확연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11번의 수분을 거쳐 자란 11세대 브라시카 라파에서 호박벌이 꽃가루를 매개시킨 경우 줄기 길이는 평균 33㎝인 반면 꽃등에가 이동시켜 자란 식물의 줄기 길이는 22㎝ 정도에 그쳤다. 사람이 손으로 꽃가루를 옮겼을 땐 11세대에서 줄기 길이가 28㎝로 나타났다.
식물 향을 나타내는 정도인 인돌(indole) 화합물 수치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호박벌로 자란 11세대 브라시카 라파는 사람 손으로 거친 수분 때보다 2.5배가량 꽃향기가 강했고 꽃등에로 자란 식물 향기는 사람 손으로 거친 수분 경우의 80% 선에 그쳤다.
이처럼 꽃가루 매개자마다 성장에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곤충이 지니는 고유의 꽃가루 포집 능력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호박벌의 포집력은 인간이 손으로 할 때보다 더욱 정밀한 것으로 나
이번 연구는 꽃가루 매개자가 식물의 단순 성장뿐 아니라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잘 보여준다. 연구진은 "단 한번의 수분이 아닌 여러 수분을 거쳐 자란 식물 생장을 비교했기 때문에 식물 진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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