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세계 7위까지 올랐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한국 해운 경쟁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거래선을 송두리채 날리는 손실이 불가피했다. 한국 해운사를 바라보는 글로벌 선주들의 눈길도 싸늘해졌다.
하지만 회사 한곳이 파산했다고 한국 해운 경쟁력 모두가 눈녹듯 녹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틈새시장을 개척하며 불황에 버틴 체력을 바탕으로 올해 권토중래를 노리는 업체들이 여럿 있다. 이들 업체는 해운 사상 최악의 한해로 불리는 지난해 큰 타격 없이 무난하게 경영을 이끌었다. 여러모로 업황이 살아날 것으로 보이는 올해에는 전년 대비 이익을 늘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쉽지 않은 한해를 보냈던 대한해운이 대표주자로 꼽힌다. 2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한해운은 올해 880억~1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려 지난해(441억원) 대비 이익이 두배 늘 것으로 예측된다. 2015년 기록한 영업이익 860억원 이상의 이익은 무난히 기록할 거란 전망이다.
지난해 최악을 찍었던 발틱운임지수(BDI)가 올해는 완만하게 회복될 거란 전망이 나오는데다 지난해 인수한 대한상선(구 삼선로직스) 실적이 올해부터 연결 매출로 잡히는 덕을 볼 수 있어서다. BDI는 철광석이나 석탄, 곡물 등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운임지수인데, 지난해 한때 290으로 최저점을 찍고 지난해 말 1200 안팎으로 반등한 뒤 지금은 800선에서 숨고르기 중이다. 증권가는 지난해 평균 676에 불과했던 BDI지수가 올해는 800~900선을 오르내리며 회복세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선박 4척을 추가로 영업하는 효과까지 더해져 지난해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KSS해운은 지난해 나쁘지 않은 실적을 거둔데 이어 올해는 이익이 더 늘 전망이다. KSS해운 영업이익은 2015년 297억원에서 지난해 326억원으로 늘어 최악의 불황이었던 지난해 만만찮은 저력을 보였다. KSS해운은 LPG(액화석유가스), 화학제품 등 특수화물만 전문으로 운반하는 해운사라 업황을 크게 타지 않은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올해는 6척의 선박을 새로 영업망에 투입해 보유선박이 26대에서 32대로 대폭 는다. 새로 영업을 돌리는 6대 선박 중 절반이 매출규모가 큰 초대형가스선이다. 수익성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그 덕에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0% 안팎 뛸 것으로 보인다. 이지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KSS해운의 선박 확장 효과가 본격 발휘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팬오션 역시 완만한 성장을 기대할만 하다. 벌크선 비중이 높은 팬오션은 올해 BDI 지수가 오르면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올해 증권가가 예측하는 영업이익은 2400억원 안팎으로 부진했던 지난해(1679억원) 대비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대한해운은 최근 한진해운 미주노선을 인수한 SM상선 지분에 돈을 일부 태웠다. 아시아, 북미노선을 기점으로 4월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는데, SM상선 사업영역인 컨테이너선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신민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선주들이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한국 컨테이너선사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 신뢰회복을 위해선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KSS해운은 야심차게 도입한 초대형가스선 운임이 하락 추세인게 걱정거리다. 운임이 계속 하락하면 수익성 개선은 어렵기 때문이다. 팬오션은 BDI지수가 예상과 달리 떨어지면 고스란히 실적악화로 연결되는 구조다. 다만 지난해 해운 경기가 워낙 나빴던데다 중국 정부의 인프라 투자 증가 효과가 있어 경기가 지난해보다 더
연말 예상 실적 대비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지 않아 투자 리스크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해운과 KSS해운이 7~8배 안팎, 팬오션이 12~13배 선이다. 적자 늪에 빠진 현대상선은 물론 PER가 15배 선인 경쟁사 흥아해운과 비교해 투자매력이 있다.
[홍장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