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을 때 정작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국제통화기금(IMF) 내에 종사하는 한국인은 없었다. 대외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한 정부관료는 "당시에 IMF는 교과서에서 특별인출권(SDR)을 배울 때나 등장하는 단체였지 우리와는 관계 없는 기관으로 치부되곤 했다"며 "당시 IMF 근무자에 대한 기록도 없다"고 밝혔다. 그 결과 '일시적 외환부족일 뿐'이라는 한국 정부 설명은 먹혀 들지 못했고, 온 국민이 IMF발 가혹한 긴축·구조조정에 힘든 시기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후 주요 국제기구 내 한국 직원은 계속 늘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약 45개 기구에 543명이 국제기구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요 국제기구에서 한국 정부가 출연한 지분율에 비해 한국인 종사자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일본의 일방적인 통화스왑 중단 및 중국의 암묵적 경제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 국제 경제환경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국제기구 내에서 한국 정부 의견을 전달할 소통 채널마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국제방파제'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15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 등에 따르면 2015~2016년 기준 유엔(UN), 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그룹(WB Group) 등 핵심 국제기구에 종사하는 한국인 종사자 비율이 모두 한국 지분율에 비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령 IMF의 경우 한국 지분율은 1.81%인데 반해 종사자수는 1.27%(34명)에 불과했다. 유엔 역시 한국 지분율은 2.039%인데 반해 사무국 직원은 0.9%인 110명에 불과하다. 특히 WB그룹과 WTO 등은 한국인 종사자 비율이 지분율의 3분의 1도 채 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분율만큼 한국인을 뽑아달라고 계속 요청하지만 해당 기관에서도 정원(TO)이 정해져있어서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나마 지분율에 비해 종사자 비율이 높은 기관은 현재 미주개발은행(IDB)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두 곳뿐이다. 이마저도 국장급 이상 고위직은 매우 드문 형편이다.
한국인 고위직은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신임 사무총장의 정책특보로 임명된 강경화(61)씨를 포함해 UN 내 5명, 경제기구 내에서는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국 국장과 소재향 WB 양허성자금 국제협력부 국장, 그리고 엄우종 아시아개발은행(ADB) 행정국장 등 3명이 전부다. 중국과 일본이 IMF 부총재를 비롯해 십수명의 요직을 각 국제기구에 파견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통상 국제경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간 협상과 IMF 권고사항 등 다자간 협상이 맞물리면서 움직인다. 가령 일본이 추진한 아베노믹스의 경우 일본인 종사자 비율이 높은 IMF에서 꾸준히 우호적인 보고서를 낸 바 있는데 이같은 보고서가 역으로 아베노믹스의 추진력을 한층 더 실어줬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기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이를 근거로 우리의 전략을 짜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우리도 각 기관별로 1% 남짓한 한국인 종사자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정부는 연 1회 국제기구 취업박람회를 열고 홈페이지(ifi.mosf.go.kr)를 통해 경력직 위주로 수시로 뽑는 국제기구 채용소식을 공지하고 있다. 이같은 홍보를 더 늘려 국내 석박사급 인재들이 국제기구로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외교부가 주관이 돼서 국제기구 정보나 해외에 진출하는 프로그램 등을 보다 체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궁극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국장급 이상 고위직을
[나현준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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