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기업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만 손발이 묶여있는 듯한 느낌이 드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 이어 마윈 알리바바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면담 소식을 접한 4대그룹 임원이 내놓은 평가다. 그가 속한 그룹의 총수 역시 출국금지 상태다. '트럼프 시대'에 맞춰 각국이 대표 기업을 활용한 민간 경제 외교에 바삐 나서고 있으나 한국은 이 행렬에서 뒤쳐지고 있다.
# 기아차는 지난해 1조원을 들여 멕시코에 공장을 지었다. 생산량의 80%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도요타, 크라이슬러 등이 속속 트럼프 당선자에 백기 투항하면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중국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현대기아차가 독자적으로 나서 트럼프 당선자 쪽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재계 차원 교류도 없으니 차기 미국 정부의 의도 파악도 안돼 속만 태우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국가들이 각국 대표 기업 등을 활용해 트럼프 정부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당선자 신분인 만큼 정부가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어 민간을 통한 교류가 효과적인 때문이다. 또 미국과 중국 관계처럼 정부간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서도 민간을 통해선 교류가 가능해서다.
그러나 이 대열에서 한국은 빠져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의 주요 교역 파트너 중에서 트럼프 당선자 측과 교류가 없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일 것"이라며 "뒤쳐지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은 거꾸로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유일호 부총리가 11일 뉴욕에서 설명회를 열 예정이지만 120여명 수준으로 예상되는 참석자의 대부분이 투자기관 관계자들이다. 경제단체가 나서는 것도 미국을 담당해온 전경련이 해체 위기에 내몰리면서 진척이 없다. 유일한 트럼프시대 대응책이 대한상의가 오는 18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관계자(빅터 차 교수, 매튜 굿맨 수석연구원)를 불러 진행하는 세미나 정도다.
재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내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염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 상황에서 대놓고 불안감을 드러낼 수도 없어 속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재계의 현실이다.
해결책은 주요 그룹의 총수들이 직접 뛰는 것 뿐이지만 특검이 재계를 정조준하면서 삼성·SK·롯데 등 주요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은 출국금지된 상태다.
삼성·SK·롯데그룹에서는 "사업을 위해 필요한 해외 일정도 소화를 못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과의 민간 경제외교는 말을 꺼내기도 힘든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엑소르 이사회(2월) 참석이 불투명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매년 첫 해외출장지로 삼았던 다보스포럼을 찾지 못하게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연말연초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 가지 못했다. 삼성·현대차·롯데는 아예 지난해 연말 인사 조차 미룬 상태다. 필요한 경우라면 특검에 요청해 해외 출장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한 그룹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출장가겠다는 말을 하겠나"라며 "일만 끝나면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굳이 출국금지까지 시켜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제단체 차원의 협력도 길목이 막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련, 무역협회 경제단체들은 외국 재계와의 협력을 지역별로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미국을 담당하는 전경련이 해체론에 시달리는 상황이다보니 진척이 없다. 전경련에서는 "현재 특별히 미국측과 진행하는 사안이 없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미 상공회의소와 작년 말에도 서울에서 '제28차 한·미 재계회의'를 가졌으나 소득은 많지 않았다. 대한상의와 무역협회는 "현 상황에서 미국과 민간 경제협력을 우리가 나서서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 기업인이 오는 20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에 참석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우오현 SM그룹 회장·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등 3명이 현재까지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트럼프 측과 면담 기회 등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계에서는 더 늦기 전에 다양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가 롯데그룹이 인수한 '롯데뉴욕팰리스호텔' 등에서 '한국 재계의 밤'을 개최하고 트럼프
[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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