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뷰티업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그룹 오너인 아버지에 이어 딸이 회사 경영에 전면적으로 나서며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과 화장품 산업이 여성의 섬세하면서도 남다른 감각이 돋보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과 맞물려 삼성,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등 업계 선도 기업에서 딸들의 후계 수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 딸들이 이끄는 'K뷰티'
![]() |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차녀 민정 씨는 이달 1일 부로 오산 아모레퍼시픽 공장 평사원으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에 첫 발을 내딛었다. |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창업자 서성환 선대 회장 때부터 이어진 품질 제일주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화장품 사업의 기본인 생산 부문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 회장 역시 1980년대 후반 장항 공장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바 있다.
유럽, 미국 시장에서 남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토니모리 또한 후계 경영을 시작했다. 창업주 배해동 회장 장녀인 진형(28) 씨가 지난 3월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후 해외사업부에 사원으로 근무하며 회사의 해외 영업과 마케팅을 배우고 있다. 진형 씨의 회사 지분 8.5% 로 개인 3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배 회장은 지난 브랜드 10주년 행사 당시 기자에게 "일반 직원들과 다름없이 현장을 중심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밑에서 부터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과 토니모리의 후계수업을 받고 있는 민정 씨와 진형 씨는 각각 미국 코넬대와 뉴욕대를 졸업한 인재다. 이들의 해외 유학 경험과 여성으로 감각을 살려 새로운 K뷰티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토니모리가 국내 최초로 유럽 세포라 전역에 입점한 원동력으로 꼽히는 독특한 디자인과 제형의 화장품 콘셉트 구상에 진형 씨의 조언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 위기의 패션업계…2세 여성 경영인 두각
삼성과 신세계 등 패션 대기업에서는 여성 후계자가 이미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이서현(44) 사장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을 계열사로 둔 정유경(45) 신세계 총괄사장은 이미 본인의 사업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 정 사장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맏딸로 지난해 12월 동시에 그룹 계열사 사장에 임명돼 후계 경영을 본격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사장은 준지(JUUN.J)가 이끄는 남성복 라인과 SPA(제조·유통일괄) 브랜드 에잇세컨즈를 양축으로 패션사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중국, 유럽 등 해외 시장 진출과 국내 부진 사업 철수 등 온냉(溫冷) 전략을 구사하며 패션 업계 위기 속에서도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정 사장은 반대로 화장품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기대가치가 높은 화장품 사업에서 자리잡아야 회사의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임직원들에게 누누이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안정적인 패션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그룹의 새로운 동력이 될 화장품 사업 키우기에 몰두하며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2년 색조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 인수를 주도한 것을 시작으로 화장품 OEM업체 인터코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오산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의 공장은 완공되면 스킨케어와 색조제품 포함 약 1500t, 수량으로는 약 5000만개 화장품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또한 지난달 15일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화장품 편집 매장 '시코르'를 론칭해 유통과 패션, 화장품 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등 특유의 경영 방식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세정, 형지 등 토종 패션기업에서는 이미 2세 경영 수업이 한창이다.
마케팅, 디자인, 기획 등의 부서에서 경영수업을 마친 이들이 신규사업 론칭, 계열사 전담 등을 맡으며 책임경영을 시작했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막내딸인 박이라 상무는 지난해 7월 인디안 브랜드를 운영하는 세정 부사장 자리에 오르며, 세정과미래 대표이사를 겸직 하고있다. 그룹 사장이 공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사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5년 입사해 비서실, 브랜드전략실 등을 거치며 실무능력을 쌓았고 핵심사업인 웰메이드 사업을 맡고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두보를 출시하는 등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 부사장은 지난 연말 임직원을 위해 출근길에 산타복장을 하고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등 젊은 경영인으로서 이색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녀인 최혜원 대표도 패션업계 2세 후계자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룹 주요 브랜드에서 7년 동안 실무 경험하면서 능력은 인정받았다. 최 대표는 지난해 형지I&C 대표로 임명되면서 유력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 여성복 브랜드 캐리스노트의 성공적인 실적을 발판으로 앞으로 형지 내 브랜드 전반에서 경영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3세 경영인들은 1970~80년대 창업가 세대의 바통
[디지털뉴스국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