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 개발 회사 창업자인 A씨는 '창업좀비', '바운티 헌터(현상금 사냥꾼)'로 불린다. 3년 전에 개발한 앱 하나로 각종 창업경진대회를 돌아다니며 자금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회 한 곳당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운이 좋으면 5000만원, 못해도 1000만~200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지난 3년간 받은 돈이 2억원에 육박할 정도다. 이 돈으로 A 씨는 직원 4~5명을 고용해 사무실을 운영하며 CEO(최고경영자)로 행세하고 있다. 업계에서 A씨는 회사를 키워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외부에 잘 포장해 지원금을 받아 자기 월급처럼 쓰겠다는 생각 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대한민국 대기업은 요즘 불안하고 일할 맛이 안난다. K스포츠·미르재단에 출연한 것 때문에 검찰, 특검 수사에 대비하느라 연말 인사와 내년 사업 계획은 미루거나 대충 결정해야 될 상황이다. 높아지는 보호무역주의와 미국·중국간 무역전쟁 여파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대사안이지만 생각할 틈조차 없다. 이달 초 국회 청문회에선 기업 총수 9명을 하루 동안 벌 세우듯이 다루더니, 특검은 글로벌 경영을 해야 할 일부 총수를 출국 금지까지 시켰다. 거미줄 규제에 얽매인 한국 대기업들은 정부에 기부금을 내고도 이를 이유로 처벌받아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갈수록 기업 환경이 나빠지면서 기업할 의지마저 꺾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일궜던 기업들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기업을 지탱해오던 3가지 중심축이 무너지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추락하고 경제적 자유는 대만이나 남미의 콜롬비아도 못한 실정이다. 대한민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조사대상 28개 나라 가운데 꼴찌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가정신이다. 창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야성의 기업가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면 안정된 직장을 찾겠다며 '공시족'이 되거나 창업을 해도 지원금만 챙기는 '창업좀비'로 전락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 최근 30여년의 기업가정신을 지수화해 시계열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87년 219.9이던 기업가정신 지수는 이번 조사에서 86.1로 60% 이상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10년만 놓고 보면 글로벌 외환위기 당시인 2009년(83.8)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경제적 자유도는 우리와 경합하는 주요 경쟁국가보다 훨씬 떨어진다. 올해 미국 헤리티지재단 조사에서 한국은 전체 178개국 가운데 29위에 그쳤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고 우리와 많은 산업에서 경쟁하는 대만 14위, 일본은 20위에 올랐다.
우리 기업에 대한 신뢰도 추락도 심각한 문제다. 내부 직원 조차도 회사를 믿지 않는다. 외부에서 기업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반기업정서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승중이다.
황인학 한경연 선임연구
[기획취재팀 = 이승훈 차장(팀장) / 김동은 기자 / 우제윤 기자 / 문지웅 기자 / 박창영 기자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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