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넘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던 고유가 시대에 국민들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알뜰주유소가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표류하고 있다.
7일 주유소업계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가 관리하는 자영알뜰주유소들이 판매 유류의 50% 이상을 석유공사로부터 구입한다는 계약사항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나타났다. 심지어 석유공사로부터 구입하는 물량이 판매량의 10%가 채 되지 않는 자영알뜰주유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석유공사는 정유사들로부터 더 높은 가격에 유류를 사와야 하고, 자영알뜰주유소 업자들은 석유공사로부터 유류를 공급받는 것을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자영알뜰주유소 업자들이 판매하는 유류의 50%를 석유공사로부터 공급받아야 한다는 계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더 싸게 유류를 구입할 수 있는 창구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유소 사업자들은 한국거래소를 통한 전자상거래를 통해 자체적으로 유류를 조달할 수 있다. 유류 가격이 저렴할 때 확보해둔 물량을 기준가격보다 싸게 내놓는 석유대리점들도 공급처로 활용되고 있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 기조로 인해 국제 석유제품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출하려던 재고를 소진하지 못한 정유사들이 기준가격보다 훨씬 싼 값에 물량을 밀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악순환에도 석유공사는 유류 공급가격을 올리거나 계약 해지 외에는 계약을 지키지 않는 자영알뜰주유소를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김홍준 알뜰주유소협회 사무국장은 “석유공사의 계약 해지를 두려워하는 업자들은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실제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자영알뜰주유소 43곳이 석유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같은 기간 농협·도로공사와 계약을 해지한 주유소는 7곳에 불과하다.
농협과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알뜰주요소의 이탈이 적은 이유는 사업상 이익이 확실해서다.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EX주유소는 고속도로에서 영업하면서 확실한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
농협주유소는 농촌 지역에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농협중앙회 에너지사업국 관계자는 “지난 2009년 지역농협이 운영하던 일반 주유소의 간판을 농협으로 바꾼 뒤 가격 경쟁력이 약화됐는데도 판매량이 늘어난 것을 보고 주유소 사업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농협은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정유사들에 대한 바잉파워가 커지고 주유소와 관리주체의 수익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주유소가 판매하는 유류를 전부 공급한다. 이로 인해 석유공사와 같은 조건으로 정유사와 공급계약을 맺었지만 더 싼 가격에 유류를 공급받고 있다. 이렇게 쌓은 이익으로 농협중앙회는 내년부터 태양광 발전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자영알뜰주유소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농협주유소의 사례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사무국장은 “자영알뜰주유소 업자들이 단기간 손해를 감수하고 석유공사로부터 유류를 많이 구입해 석유공사의 바잉파워를 늘려 주면 장기적으로 양쪽이 윈윈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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