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교과서적으로 보면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은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해 물가상승 압력을 줄이려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기준금리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은행으로서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 물가가 현행 물가안정목표제를 벗어나 과도하게 올라가더라도 한은이 금리인상 카드를 빼들기는 쉽지 않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금리인상은 찬물을 끼얹는 꼴인데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에 경제주체들의 부채규모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일단 금리인상은 자금공급 비용을 증가시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공백 장기화에 성장동력을 잃고 힘을 잃어가는 한국경제에 무거운 추를 하나 더 매다는 셈이다.
지난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이 “앞으로 경제상황이 현재 전망보다 악화될 경우 통화정책의 완화적 기조를 더 강화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정도로 한국 거시경제 상황은 금리인상을 고려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300조원를 넘어선 가계부채는 보다 직접적인 위험이다. 기준금리 조정 폭인 0.25%포인트는 단순 산술계산으로만 따져도 전체 국민 이자부담 3조 2500억원을 쥐락펴락하는 숫자다. 한은은 2015년대비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한계가구·부실위험가구가 각각 9만가구, 6만가구씩 확대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계가구는 순금융자산이 마이너스인 동시에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DSR)이 40%를 초과하는 이들이며 부실위험가구는 가계부채위험지수(HDR)이 100을 초과하는 가구다.
한은은 아직까지는 저물가와 싸우고 있다. 한 금통위원이 금통위에서 “앞으로 저유가의 영향이 약화되면서 물가오름세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긴 했지만 일단은 현재보다는 물가가 좀 더 올라줘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한은이 지난해 12월 새롭게 2016~2018 중기 물가안정목표제(2%)를 설정한 이후 한번도 설명책임(6개월 이상±0.5%포인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주열 총재는 전례없는 물가관련 설명 책임 기자간담회를 지난 7월에 이어 10월에도 가진 바 있다. 12월 소비자물가가 1.5%이상 오르지 않는 이상 내년 1월에도
한은 관계자는 “과거 OPEC 감산 합의 직후와 비교하면 아직까지 유가 상승폭이 제한적이다”며 “전기료 누진세 완화 등의 효과가 겹쳐 당분간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고 분석했다.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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