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가 8년만에 감산에 합의하면서 조선업계의 보릿고개를 끝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정유업계는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을 기대한다. 그러나 철강·화학·해운업계에는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함께 존재한다는 평가다.
주요 외신들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정례회의에서 일일 생산량을 120만t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감산에 참여할지 불투명했던 러시아와 이란도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하면서 국제유가는 일제히 급등했다. 외신들은 실제 감산이 이뤄지면 국제유가가 장기적으로 배럴당 6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내년 1월 인도분은 전날 대비 9.3%(4.21달러) 오른 배럴당 49.4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하루 상승폭으로는 9개월만에 가장 크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거래된 내년 1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도 배럴당 50.47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8.82%(4.07달러) 상승했다.
정유업계는 유가 상승에 따라 바로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4분기 실적을 집계할 때 유가 상승분만큼 재고평가이익이 발생한다. 재고평가이익은 유가가 쌀 때 사놓은 원유 가격이 실적을 계산할 때 오르면서 생기는 이익을 말한다. 정유업계는 지난 2분기에도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으로 정유부문에서 호실적을 낸 뒤 유가가 하락하자 부진한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바 있다.
유가 상승은 유전 개발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업계에도 호재다. 해양플랜트와 유조선 발주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서도 조선업황이 전환될 조건으로 배럴당 60달러의 국제유가가 제시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오일 메이저들이 기술 개발을 통해 채굴단가를 어느정도 낮춘 것으로 안다”며 “이전까지는 배럴당 60달러가 유전 개발에 나서는 유가 수준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50달러 이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유전개발에 나서 발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유가하락 때문에 보류된 프로젝트의 발주부터 재개될 것으로 봤다.
석유화학·철강·해운업계는 손익을 섣불리 평가하지 못한다. 유가 상승에 따라 경기가 회복되면 기초소재의 수요는 증가하지만 제조원가도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역시 물동량 증가와 선박 운항 비용 증가라는 양면을 갖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상승하면 일단 매출은 증가한다”며 “그 증가폭이 원재료 가격 상승을 반영하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은 향후 국제유가가 50~60달러 선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데 모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며 “중동 산유국이 원유 생산을 줄여 유가가 오르면 당장 미국에서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향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에 따라 이번 OPEC의 감산이 경기에 어떤 영향을 줄지 결정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OPEC는 이번 감산 결정으로 쓸 수 있는 모두 카드를 써버린 것”이라며 “이제 유가에 따른 세계 경기 변동의 키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트럼프가 취임한 뒤 원유 수출을 금지하면 미국을 제외한 세계 경기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내 원유 공급이 늘어나면서 에너지 가격이 떨어지고, 이
허 교수는 “이렇게 되면 미국 제조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유류와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해 국내 정유·석유화학업체들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지난 2012~2013년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고 우려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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