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생명공학계의 혁명으로 불리는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기술을 세계 최초로 암 환자에게 적용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과도한 규제 탓에 이 기술을 적용한 임상은 꿈도 못꾸는 분위기다. 학계에서는 유전자 가위가 의료·바이오는 물론 많은 산업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정부의 적절한 지원과 제도개선,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쓰촨대 루유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말 악성 폐암 환자의 몸속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변형한 세포를 주입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했다고 16일 밝혔다. 네이처는 이 소식을 전하며 “전 세계에서 유전자 교정 기술을 임상에 응용하려는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연구진이 지난달부터 시작한 임상은 우리 몸속에 면역세포 유전자를 교정(editing), 암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폐암 환자의 혈액에서 면역세포를 채취한 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하나의 유전자를 망가뜨렸다. 이 유전자는 ‘PD-1’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암세포는 PD-1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과 결합해 면역세포의 공격을 막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교정된 세포를 배양시킨 뒤, 이 수를 늘려 암 환자에게 주입했다. 루 교수는 “PD-1이 없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파괴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이번 임상시험은 안전성 확인인 만큼 향후 6개월 동안 모니터링 하면서 부작용이 있는지를 확인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 연구진의 이번 임상으로 유전자 가위에 대한 임상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될 전망이다. 칼 준 미국 펜실베니아대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임상은 미국과 옛 소련의 우주 경쟁을 이끌었던 ‘스푸트니크 1호’와 같다”며 “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1957년 옛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하면서 당시 과학기술분야 최고로 자부하던 미국에 충격을 줬다.
미국도 현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한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6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의 유전자 가위 연구에 대한 임상 승인을 허가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만 떨어지면 인체 실험이 가능해진다. 중국은 내녀 3월 방광암, 전립선암 등 환자를 대상으로 한 또다른 임상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규제에 가로막혀 유전자 가위와 관련된 임상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윤리법에는 유전자 가위를 환자 체내에 전달해 치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국가 중 체내 유전자 치료를 법률로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 치료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도 심각한 장애 및 생명에 위협이 되는 질환에 대해서만 연구개발을 허용한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자 가위는 국내 제약·바이오·의료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정부의 적절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여전히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기준 등을 살펴보겠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 어떠한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원호섭 기자]
■ <용어설명>
▷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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