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에 유가, 도가, 묵가가 있고 강호무림에 소림, 무당파가 있으며, 정신의학에 프로이드학파와 융학파가 있듯이, 전통의학에도 학술유파가 있다. 유파에 대하여 혹자는 “침소봉대로 차이점을 강조하고, 편협한 이론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린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백가쟁명을 통해 학문이 발전하며, 유파 발생은 학문 성숙의 지표이다.”라고 하여 그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 일반적이다.
전통의학에서, 특정 학술유파의 이론이 체계를 갖추고 치료 효과를 광범위하게 인정받으면, 학회가 구성되어 유파 나름의 독특한 기풍과 역사를 형성하고, 이것이 발전하여 전문학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론의 보편성과 대중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 유파는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진다. 한의학에는 동의보감학파, 사상체질학파, 부양학파, 상한학파 등 다양한 학파가 있으며, 일본에도 고방파와 시방파가 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넘칠 정도이며, 중의대 교육과정에 포함된 ‘각가학설(各家學說)’의 주요 내용이 바로 중의학 유파의 학술사상과 임상사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의학 학술유파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상한학파와 온병학파이다. 온병학파는 청대(淸代)에 성립된 학술유파로서 시대 변화와 상한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성립된 학파이다. 이에 반해 상한학파는 “온병학 이론은 상한론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의성(醫聖) 장중경의 가르침을 중시하여 이를 임상에 직접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의학이 대규모로 도입되면서 중국에서는 학파간의 논쟁보다는 서양의학에 맞서 “중의학이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시급하여, 상한과 온병의 이른바 한온논쟁(寒溫論爭)은 잠복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국력이 강화되고 국제사회에서의 지위가 제고되면서 중국에서는 제자백가로 대표되는 국학(國學)과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유행처럼 번졌다. 중의학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났으며, 중의약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상한론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임상현장에서 중의의 특색과 장점을 찾던 중의사들에게 ‘상한론’의 방약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후시수(胡希恕) 경방의안집’은 하나의 복음이었다. 후시수 경방의안집의 발간을 신호탄으로, 중국 경방의학은 본격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했으며 이 책을 통해 경방과 임상실용의 접합점을 찾은 젊은 중의사들은 용기를 내어 임상실천에서 상한방을 실제로 응용하기 시작했으며, 각종 경방학회와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경방의 임상성과를 공유하고 보급했다.
현대 중국 경방학파는 장부이론을 기초로 하는 전통적인 중의이론이 ‘상한론’의 실질과는 관계가 없으며, 환자의 증상을 분석하여 거기에 적절한 처방과 약물을 찾는 방증대응이야 말로 중의 변증론치의 첨단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경방학파는 상한론은 ‘황제내경’과는 역사적 맥락을 달리하는 저서이며, ‘신농본초경’‘탕액경’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주장하고, 임상에서도 상한론에 나오는 방약을 원형에 가깝게 사용하고, 일부 질병이 아닌 의난병, 응급질병을 포함하는 전체 임상영역에서 상한방을 활용하여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후시수 경방의안집’은 원서의 상편 의가소전(醫家小傳), 중편 전병론치(專病論治), 하편 진여만화(診余漫話)와 독자들의 ‘상한론’학습에 도움을 주고자 번역자가 정성을 들여 정리한 “상한론 방제 113수와 약물 82미”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병론치에는 19종의 병증에 걸친 123수(首)의 의안이 실려 있으며, 진여만화는 후시수 선생의 의학이론과 일화로 구성되었다. 각 병증별 의안에는 질병에 대한 개론과 해당 병증에 대한 후선생의 치료 사로(思路)와 전형적인 임상사례, 펑스룬 선생의 의안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여기에 수록된
[글 = 베이징전통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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