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에 초상이 났는데 우리집 식구들 밥 좀 굶는다고 보챌 수는 없잖아요. 그나마 원가라도 보상이 된다면 다행인거고 안된다 해도 어떻게든 버틸 수 밖에요.”
삼성전자 협력사 A사 대표는 갤럭시 노트7 단종의 충격이 현실화 된 지난 1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갤럭시노트7 납품 차질로 매달 100억원 이상의 매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보상해 달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갤럭시 노트7 단종에 따른 후폭풍이 부품 업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정작 삼성과 거래하는 중소·중견 협력사들은 ‘힘들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삼성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불만을 제기하는 이동통신사와 소비자들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을(乙)’인 협력사들까지 나서 삼성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갤럭시 노트7 단종 사태로 중소 협력사들이 입을 피해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집계된 자료는 없다. 다만 단종 직전에 11월말까지 생산계획이 잡혔고 이를 위해 부품업체들이 재고를 쌓아둔 상황이라 전체 피해액은 1조~2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협력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삼성에서 제공할 보상의 범위와 규모다. 아직까지 협력사 보상에 대해 삼성에서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은 없다. ‘원가만 보상한다’ ‘전혀 보상하지 않는다’ 등 각종 설(說)만 떠돌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중견 협력사 일부는 “삼성으로부터 ‘9월까지 주문 물량에 대해 대금이 지급되지 않은 부분은 보상해주겠다’는 구두 통보는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보상의 기준이 불명확해 업계 혼란은 여전하다. 완제품만 보상하는지 반제품이나 원재료도 보상하는지, 보상금액은 제조원가 기준인지 납품가 기준인지 등 궁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을 억누른 채 삼성의 공식입장만 기다리고 있다. 1차 협력사인 B사 관계자는 “재고와 반제품의 보상 범위를 정하기 위해 삼성에서 공장 실사를 나온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며 “보상 관련 의사결정이 빨리 이뤄지기만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보상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은 삼성 입장에서 후속모델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극소수 1차 협력사에만 한정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거래하는 전체 협력사는 1000여개, 이 중 1차 협력사의 수는 100개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을 만들거나 다른 거래선으로 대체 가능한 협력사들은 사실상 삼성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과거 갤럭시S4나 S5의 판매량이 예상치를 밑돌 때에도 재고 비용은 협력사들이 대부분 떠안았다”고 말했다.
특히나 갤럭시 노트7의 출시 초기 반응이 뜨거웠던 탓에 여유있게 준비해뒀던 재고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대다수 협력사들이 갤럭시 노트7 납품에 대비하고자 안전재고를 비축해둔 것으로 전해졌다. 안전재고란 예상치 못한 고객사의 주문 급증에 대비해 미리 만들어두는 재고다. 극도로 짧은 납기를 요구하는 글로벌 대기업들과 거래하면서 생겨난 협력사들의 생존전략이다. C사 관계자는 “현재 갖고 있는 완제품 재고 중 30% 정도는 고객사 주문서가 없는 안전재고”라며 “이 재고는 손실처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보상이 안된다면 협력사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다른 납품처를 찾는 일이다. 과거에도 삼성은 전략 스마트폰의 판매량이 예상보다 저조할때 갤럭시A와 갤럭시J 등 보급형 모델을 출시해 협력사들이 재고부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곤 했다. 하지만 단순히 판매가 저조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갤럭시라는 브랜드 이미지 자체가 타격을 입은 상황이어서 단시일 내에 추가 제품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갤럭시S7용 부품 주문량을 늘렸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1차 협력사 D사 관계자는 “갤럭지S7용 부품 주문이 늘면서 큰 짐은 덜었지만 갤럭시S8이 나오기 전까지 공백을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2차 이하 협력사들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1차 협력사들은 당장 보상금이 없더라도 버틸 수 있지만 2차 이하 협력사들은 당장 보상금을 받거나 대체 남품처를 찾지 못하면 회사 존립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E사 관계자는 “아직 삼성으로부터 얼마나 보상을 받을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2차 협력사들에 대한 대금 지급은 모두 정지해 둔 상태”라고 전했
협력사들이 만든 갤럭시 노트7 부품은 크게 전용품과 범용품으로 나뉜다. 통신용칩과 회로 이어폰잭 카메라모듈 등 범용품은 유사한 다른 제품에 납품이 가능하다. 하지만 케이스와 커버글라스 등은 이제 쓸모가 없다. 전용품을 만들던 업체들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질 전망이다.
[정순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