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미국의 온라인 유통 공룡 아마존이 ‘주4일 근무제’를 도입키로 하면서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파트타임직이긴 하지만 정규직과 차별도 없고 탄력 근무가 가능해 ‘꿈의 직장’이라는 호평을 받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한화종합화학 등 주 4일제 실험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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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월부터 주4일제를 전면시행햇지만 지난 9월5일 파산을 맞이한 후 텅텅 비어 있는 디자인전문회사 에이스그룹 사무실. <사진=매일경제DB> |
‘꿈의 기업’. 지난 2010년 창립 때부터 직원 200여명을 대상으로 하루 6시간씩 주 30시간 근무제를 운영해오다 올해 1월부터 주4일 근무제를 전격 도입한 에이스그룹에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최근 주4일제 마지막 근무일인 목요일 오전 기자가 찾아간 에이스그룹 사무실은 불이 꺼져있었고 직원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세 번 사무실 벨을 누르자 안에서 나온 회사 관계자는 “경영 사정이 안 좋아져서 회사를 정리 중”이라며 말을 흐렸다.
금천구에 있는 가산비즈니스센터 빌딩의 4~6층, 11층, 15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에이스그룹은 이제 11층 사무실만 남겨놓고는 사무실을 모두 빼거나 문을 닫은 상황이다. 회사가 주4일제 근무를 도입한 건 디자인 등 창의적 사고를 중심하는 업무인 만큼 외형적 근무시간보다 효율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교롭게 에이스그룹의 경영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한 건 주4일제 근무를 시행한 올해 초부터다.
지난 2월부터 직원들의 급여가 체불되기 시작했다. 3월, 4월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3달 연속 임금이 체불되자 직원들의 70%인 70여명이 단체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했다. 모 기업신용분석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6월부터 8월에 이르기까지 에이스그룹의 채무불이행 건수는 12건으로 총 연체 금액만 50여억 원에 이른다. 지난 4월 기업회생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이달 5일 에이스그룹에게 파산 선고를 내렸다.
에이스그룹을 상대로 임금체불 관련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전(前) 직원들은 에이스그룹에서 주4일제 근무를 했던 시절을 달콤쌉싸름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에이스그룹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중소기업이다 보니 주 4일제 시행 이전부터 회사가 아주 탄탄한 상황은 아니었다”며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해줘야 하는 급여라든가, 안정성에 관한 부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은 경영위기가 왔을 때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던 셈”이라고 말했다.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회사 재무상황이 넉넉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의욕이 앞섰던 무리한 시도였다는 게 직원들의 대체적 평가다. 그러나 에이스그룹 이종린 대표는 “단통법 시행 이후 매출이 크게 줄어드는 등 다른 사정이 있어서 그렇지, 회사가 어려워진 건 주4일제 때문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반면 에이스그룹보다 ‘주4일제 시행’ 역사가 훨씬 긴 충북 충주시 단월동에 위치한 화장품 제조기업 에네스티는 안정적으로 제도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주 4일제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한 디자인 책임자가 가정일과 회사일을 동시에 진행하기 힘들다며 우성주 대표에게 4일만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당시 국내 중소기업 업체로는 최초로 전 직원 80%를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시행했다. 또 2013년부터는 전 직원이 주 4일제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8일 기자가 찾은 에네스티 사무실은 휴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사무실 크기와 책상 배열 등 사무실 겉모습은 여느 기업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찾아 온 휴일을 기다리는 직원들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금요일은 교대로 당직 근무자를 맡아 진행하지만 6년 째 손발을 맞춰온 터라 업무에는 큰 차질이 없다는 게 에네스티 측의 설명이다.
직원 김병준 씨(34)는 “예전 직장에서 결혼초에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는 주 5일은 커녕 주말도 없이 회사 일을 봤다”며 “여기서는 직장일과 가족, 취미생활 사이에 균형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주말이면 수안보 인근에서 1000평 정도의 벼농사를 지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주말이 지나 출근 때 어김없이 찾아왔던 ‘월요병’ 역시 주4일제 시행이후 아예 사라졌다는 게 김씨 얘기다.
이 회사 우 대표는 “큰 기업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회사가 경영이나 재정 측면에서 안정되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제도를 시행한 것”이라며 “빠듯한 4일 근무시간 동안 스스로 업무 목표를 정신없이 쫓다보니 낭비하던 시간이 없어졌고 근무효율은 물론 실적도 나날이 향상 중”이라고 자랑했다. 주4일제를 전면 시행한 지난 2013년 연매출이 83억7000여만 원에서 시행 3년차를 맞은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초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지역 구직자들 사이에서 ‘일하기 좋은 기업’이란 평가까지 나오면서 ‘구인난’이 심각한 지방의 중소기업들이 기대하기 힘든 우수 인재들도 입사하고 있다는 게 우 대표 얘기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
[서울 = 유준호 기자 / 박종훈 기자 / 충주 =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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