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지난달 31일 법정관리(통합도산법에 따른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청산 가능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국영 해운사 역할을 하게 된 현대상선을 통해 해운업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내달 중 현대상선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마무리짓고 한진해운 알짜 선박·인력 흡수에 들어간다. 일단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진해운은 법원 판단에 따라 회생절차를 밟을지 청산할지가 결정된다.
통상 신청부터 법정관리 개시 결정까지는 한달이 걸리지만 한진해운의 경우 해외 자산 압류 등 긴박한 상황을 감안해 일주일 이내에는 결론이 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대상선은 법정관리 수순에 들어간 한진해운 자산을 단계적으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전력 강화에 나선다. 한진해운은 알짜 자산을 현대상선에 넘기게 되면 사실상 청산 절차를 밟게될 가능성이 높다.
◆한진해운 우량자산 얼마나 남았나
한진해운이 자구안을 짜내는 과정에서 해외 운영권, 터미널 등 돈 될만한 자산은 대부분 팔아버렸다.
한진그룹 육상운송 계열사인 (주)한진은 아시아 8개 항로 운영권을 비롯해 평택 컨테이너 터미널 지분, 부산해운신항만, 베트남 터미널 법인 지분 등을 2351억원에 사들였다. 매도 가능한 금융자산은 84억원이 고작이다.
결국 남은 자산은 선박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터미널 지분(54%), 인적 자산으로 압축된다.
한진해운이 보유한 가장 큰 자산은 선박이다. 한진해운은 해외 선주에게 빌린 용선을 걷어내면 총 60척 회사 선박(사선)을 보유하고 있다. 올 상반기 장부가 기준 4조 5609억원으로 유형자산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사선 전량을 선박금융을 통해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분은 은행권 빚을 갚는데 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해외선주와 협상..우량선박 승계
이에 산업은행은 해외 선주사와 협상을 통해 한진해운 우량 선박을 승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진해운은 선주사에게 용선료를 내면서 빌려쓰는 일종의 ‘렌터카’ 같은 용선(빌린 배)와 소유권 취득을 염두에 두고 대부분 장기할부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사선(회사 소유 선박)을 들고 있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해외 선주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 용선을 회수하면 어딘가에는 또 배를 빌려줘야 한다”며 “회수된 배 일부를 현대상선이 다시 빌리는 방식으로 도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종전까지 가닥을 잡은 용선료 조정 수준(27%)을 웃돌지 않는 범위에서 알짜선박만 인수하겠다는게 산업은행 구상이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한진해운 보유 선박 중 영업이익 창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선박을 인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장기할부 금융 형태로 보유한 회사소유 선박도 할부조건 등을 재협상해 현대상선이 부분적으로 인수한다.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은 “규모와 시기는 현재로선 미정이고 선주사와 협상에 달렸다”고 전했다.
이 경우 한진해운이 종전 타결했던 선박금융 유예 조건(향후 3년 6개월 이후 원금 4700억원 유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자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선박·인력 흡수 과정에서 1000억원 안팎 추가 자금이 필요할 경우 논의를 거쳐 출자 전환이나 유상증자 등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해운통계 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보유 규모는 98척으로 세계 7위 점유율(2.95%)을 갖고 있다. 현대상선은 60척(43만6000TEU·2.1%)으로 14위에 올라있다.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30~40%(30~40척)가 현대상선으로 옮겨간다고 가정하면 현대상선은 현재 한진해운 규모 컨테이너 선대를 꾸릴 수 있다.
◆통합 현대상선..인적구성은 어떻게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자율협약 관행에 따라 이미 파견돼 있는 경영관리단을 제외하고는 이사회 구성원이나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채권단 인사를 현대상선에 파견하지 않을 예정이다.
정 부행장은 “은행원은 금융에, 제조업은 해당 전문가가 주력하는 게 좋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며 “대주주인 채권단으로서 해운 전문가가 회사 경영정상화와 해운업 경쟁력 강화에 전념하도록 지
대우조선해양 매각지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경영 정상화가 가닥을 잡는 대로 현대상선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숙제다.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한진그룹이 암중모색 이후 궁극적으로 통합 현대상선을 가져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김정환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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