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일해서 뭘 좀 바꾸다가 정권이 달라지고 나중에 다른 잣대로 비판하면 어느 공무원이 나서겠습니까. 지금 한국경제는 엄청나게 중요한 조치를 해야하는 시점입니다. 그 당시 국내외 경제여건을 감안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그런 점은 후대에서 지켜줘야 합니다.”
이용희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는 선진국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한국경제와 관련해 “공직사회부터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이나 규제개혁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접근법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부작용을 줄이는 방식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은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경기 침체기에 과감한 개혁에 나서지 않고 대신 시간이 지나 경기가 좋아질 때 부작용 없이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일본의 저성장을 장기화시킨 원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교수는 최근 40여년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제언을 담아낸 ‘위기의 한국경제 그 기회를 말하다’을 펴냈다. 3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곪을대로 곪은 기업 구조조정 문제의 원인이 공직사회에 만연한 ‘현상유지’ 자세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감사·수사 실적이 필요함에 따라 관행적으로 정책이 사후평가를 받다보니 공무원들이 앞장서지 않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최소 4년 전부터 나타난 문제인데 막연하게 ‘한 두해 지나면 나아질수도 있겠지’한 겁니다. 해당기업, 주채권은행을 비롯해 주무부처 등 관련있는 사람들이 모두 문제를 해부하기보다는 소극적으로 봉합하는 일만 반복한거죠. 반드시 했어야 할 감시의무를 소홀히 한 채권은행 관계자들엔 분명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197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 교수는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원에서 예산국 등을 거치며 30여년간 정통 경제관료로 생활했다. 주OECD 대표부 공사를 마지막으로 2004년 공직을 떠난 후 한국거래소 상임감사를 거쳐 민간회사 CEO까지 역임했으니 민간·공공부문 각분야를 두루 경험한 셈이다.
“한국이 정말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많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낮은 이자로 쓸 수 있는 자본이 풍부하고 기술면에서 한국이 우위에 있는 산업이 분명히 있습니다. 늘어나는 복지와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는게 관건이죠.”
그는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봤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신용정보 CEO시절 임금체계 개편 등 개혁작업을 수행하며 2년 넘게 노조와 부딪친 경험이 있다.
“미국은 같은 회사라도 임금이 개인별 경력에 따라 다르죠. 물론 퇴사 후 재취업도 쉽고요. ‘10년 다니면 얼마받겠다’ 이런 연공서열 마인드를 완전히 탈피해야 합니다. 한국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정치·사회적으로 결국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공무원 후배들의 자세변화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예전에는 공직에 들어오면 어떤 어려움에 대해서도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이 강했는데 요즘은 공무원도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생활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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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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