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목걸이나 하나 사볼까 하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며칠 전 만난 후배가 자신의 두살배기 아들에게 ‘미아 방지 팔찌’를 사줬다고 얘기한 게 쇼핑의 계기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요즘 우리 아이도 같이 외출을 했을 때 날 당황케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혼자 저만치 가버리는 경우가 왕왕 생겼기 때문이다.
내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질 정도로 멀리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핸들링을 못 하는 수도 생기겠구나란 마음에 겁이 덜컥 나곤했다. ‘옳지, 그럼 이참에 나도 사줘야지’라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모바일 쇼핑. 하트에서부터 천사, 구름 모양을 비롯해 태어난 띠 별 동물 모습을 본떠 만든 목걸이까지 아주 다양했다.
문제는 잠시 후부터. 그 예쁜 목걸이를 보면 볼수록 내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는 것이다. 급기야 퇴근길 많은 사람들이 탄 지하철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느라 혼이 났다. “왜 이래, 창피하게…” 멀쩡히 잘 있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 그래서 떨어질랑 말랑한 내 눈물 방울을 누가 볼까봐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두려움과 막막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말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표현한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의 한 구절까지 떠오르니 쓰나미처럼 더 훅 몰려오는 슬픔 탓에 쇼핑은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이후 단 한번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석 달 전부터 걷기 시작했고, 그 전까지는 거의 아기띠에 안거나 유모차에 태워다녔으니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되려 이상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품안에 안고 다닐 때보다 스스로 걸어다니게 할 때가 많고, 왕성한 호기심은 아이를 이 곳 저 곳으로 자유롭게 이끌고 있다. 아이가 “잠깐 여기 있어” 혹은 “여기서 기다려”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뒤부터 나는 곧잘 이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를 하거나 뒷정리를 하곤 한다.
그런데 아이를 잃어버리는 흔한 상황 중 하나가 부모가 아이에게 “잠깐만 여기 있어”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라고하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이렇게 저려오는데 실제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마음은, 그 사무치는 안타까움과 슬픔의 무게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우리나라의 실종 아동수는 2013년까지 매년 꾸준히 늘다가 2014년부터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실종 아동수는 2011년 4만3080명, 2012년 4만2169명, 2013년 3만8695명에 이어 2014년 3만7522명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장기 실종 아동수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고, 여전히 하루 평균 100명에 가까운 어린이가 부모를 잃어버리는 가슴 철렁한 사고를 당하고 있다.
한국복지재단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특히 유아기인 3~7세는 아동의 미아 발생률이 전체 실종 아동수의 45%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시기다.
나 역시 어렸을 때 길을 잃어 미아가 될 뻔한 적이 있다. 5~6살 무렵이었다.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 뒷산을 따라갔다가 그만 뒤쳐지면서 산에 홀로 남게 됐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 됐었을텐데, 무조건 직진행을 외친 난 당시 야트막한 산이나마 이를 넘어 전혀 다른 동네로 내려가게 됐다.
아이를 잃어버린 지 반나절 만에 옆 동네 동사무소에서 날 찾은 어머니는 공중 목욕탕에 제일 먼저 나를 데리고 가셨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데다 콧물 눈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이며, 팔 다리를 깨끗이 씻겨주기 위해서였다. 엄마를 만났다는 반가움도 잠시, 얼마나 때를 세게 미시던지 너무 아파 소리를 질렀다. 어쩌다 길을 잃어버리게 됐냐는 다그침과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엄마 말씀에 왠지 서러워 더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난 부모님을 다시는 못 만나 고아가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시달리며 반나절 내내 울었는데, 정작 어머니는 그런 나를 달래주기는 커녕 혼내기만 하셔서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머니는 딸을 또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더 다그치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긴장하게 했다는 것을. 내게도 자식이 생기고 보니 알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나마 당시 내가 의사표현을 할 줄 알았던 나이였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길을 잃더라도 주변 어른들에게 스스로 부모님 전화번호나 집주소 등을 알려줄 수 있고, 또 알려주기만 하면 도움은 얼마든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유아기 때는 부모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 이름과 주소 등을 새긴 미아 방지 목걸이, 팔찌를 내가 준비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 경찰청에서 시행 중인 사전 등록제 역시 적극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미리 경찰에 아이의 지문과 얼굴 사진, 기타 신상 정보를 등록해두는 것으로, 실종시 등록된 자료를 활용해 더욱 신속하게 아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말 못하는 아이에게, 그런 아이를 잃어버려 경황이 없는 부모를 대신해 소중한 정보 제공을 하는 것이다. 사전 등록은 경찰서나 인터넷 경찰청을 통해 누구나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미리미리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령 말귀를 알아듣고, 곧잘 말을 하는 아이라면 미아 예방 3단계 구호 즉 “멈춰요! 생각해요! 행동해요!”를 알려주는 게 좋다. 부모를 잃어버렸을 경우 우선 제자리에 멈춰 기다리고, 자기 이름과 연락처를 생각해내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가급적 부모와 함께 밖에 다니되 친구와 나가 놀거나 어디를 갈 때는 꼭 행선지를 부모에게 말하도록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부모의 눈 앞에서 아이가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35초. 정말로 한 순간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평생 그 아이를 가슴에 묻고 지낼 수밖에 없다. ‘물먹은 별’이 돼서 말이다.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 순간, 나는 엄마로서의
그리고 지금 당장 길을 헤메고 있는 아이에게도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먼저 손을 내밀려고 한다. 시 유리창의 한 구절을 생각하며.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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