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해운강국으로 군림하던 한국은 이제 생사의 기로에 섰다. 한국 경제에서 무역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해운강국이란 명성은 우리 수출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1990년대 세계 상위 10대 해운사에 포함되던 양대 국적선사 중 현대상선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지 오래고, 한진해운은 세계 8위 위상에 걸맞지 않게 글로벌 시장에서 힘이 약해졌다.
모두들 합병 등을 통해 대형화에 나설 때 우리는 경영권 분쟁에 몰두했던 결과다. 정부나 금융권 역시 해운업의 변화를 읽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19일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선박규모 각각 62만 5416 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대), 40만 257 TEU다. 글로벌 상위 20개사 총 선박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한진해운은 3.5%, 현대상선은 2.7% 수준이다. 한진해운은 2000년 6.9%를 기록한 후 4.6%(2005년), 4.1%(2010년)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고, 현대상선은 4.2%이던 1997년에 비해 크게 위축됐다.
반면 글로벌 선사들의 경쟁력은 점차 높아졌다. 같은 기준으로 중국의 코스코는 2010년 4.2%에서 2016년 8.9%로 두 배 넘게 증가했고, 독일 하파크로이드 역시 2.9%를 기록했던 2000년에 비해 지금은 5.2%까지 커졌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는 2000년 이후 17~1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국내 해운업계가 갈길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머스크 등 글로벌 해운사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선사들의 경쟁력 강화의 가장 큰 원천은 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었다. 일례로 머스크는 글로벌 선사를 인수하며 세계 최대선사로 올라섰다. 지난해 이후에만 중국 코스코(중국해운 인수), 프랑스 CMA-CGM(싱가포르 NOL), 독일 하파크로이드(UASC 컨테이선부문 인수 추진) 등도 M&A를 통해 덩치를 키웠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한국의 양대 국적선사는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집안일을 처리하느라고 세계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한진해운은 2006년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세상을 뜬 후 부인이었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회사를 맡았다. 그때부터 한진해운을 그룹에서 독립시키려는 최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간 다툼이 시작됐고, 해운업 불황이 시작되자 결국 최 회장은 2014년 조양호 회장에게 백기를 들고 경영권을 넘겨줬다. 현대상선 역시 2000년대 초반 왕자의 난 이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고, 현정은 회장이 부임한 후엔 KCC부터 현대중공업, 쉰들러까지 10여년간 지루한 다툼이 계속됐다.
200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해운 시장의 장기 불황이 시작되면서 집안싸움의 후유증은 더 컸다. 머스크 등 글로벌 해운사들은 초대형 선박을 발주해 운임료를 떨어뜨리는 사이 국내 양대 국적선사는 손을 쓰지 못했다. 특히 지금 수익성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고가의 용선료도 해외 해운사에 비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일본 대형선사들은 2009년 고점에서 잡은 선박 용선계약을 해약하는 등 조기반선을 감행했다”며 “2009년께 NYK, MOL, K라인 등 일본 대형3사는 일시적으로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나 이후 손실 이상의 이익을 회복했다”고 분석했다. 엄 연구원은 이어 “머스크는 조기투자를 선택해 2011년 20척의 1만 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를 발주하는 등 경쟁력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정부에서도 해운 산업 전체를 놓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외환위기 시절 200% 룰이다. 부채비율은 200%로 맞추라는 것인데 배를 사야하는 해운사 입장에서는 110여척의 선박을 매각하고 용선으로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었다.
한 중견해운사 대표 A씨는 “2000년대 들어서 해운업 호황이 시작됐지만 정작 국내 해운사들은 이익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며 “200%룰 때문에 배를 지어 경쟁력을 확보해 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이어 “뒤늦게 배를 빌려 돈을 벌려고 했지만 이미 용선료가 높아진 상황에서 글로벌 해운사들에 비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장기 불황 국면에서 해운사들의 영업환경이 날로 악화되는 과정에서도 해외와 달리 한국에선 과감한 산업 구조조정 혹은 지원 등의 결정은 없었다. 중국은 정부가 나서 코스코와 CSCL에 2014년 총 800억위안(약 14조2200억원) 유동성 지원과 합병을 주도했다. 덕분에 글로벌 4위까지 올라선 코스코는 최근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과정을 주도할 정도로 성장했다. 또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도 각각 머스크, 하파크로이드, CMA-CGM 등 자국 해운사에 대한 자금지원 등을 통해 해운사들의 생존과 대형화를 지원했다.
낙후된 금융시스템 역시 해운업 몰락을 촉진시켰다. 중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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