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아 상쾌한 향의 향수를 구입하고 싶었던 30대 직장인 김지효 씨는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 샤넬, 디올 등 명품 브랜드 향수를 주로 구매해온 김씨는 명품 브랜드의 향수는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스웨덴 향수 전문 브랜드 ‘바이레도’ 매장으로 향했다. 이른바 ‘프리미엄 니치(premium niche)’ 향수를 선택한 것이다. 니치 향수는 향수 전문 브랜드에서 나오는 소수를 위한 고급 향수다. 가격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약 30만 원대로, 일반 향수보다 가격이 2배 가량 높다.
‘샤넬 넘버 5’, ‘크리스찬 디올 쟈도르’ 등 업계의 영원한 강자일 것 같던 명품 브랜드의 향수들이 프리미엄 니치 향수의 부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있다. 이에 명품 브랜드들은 고가를 넘어 초고가 정책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2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샤넬, 디올, 지방시,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들이 향수를 콜렉션으로 묶어 판매하는 ‘오뛰 퍼퓨머리’ 방식으로 향수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오뛰 퍼퓨머리는 소수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초고가 패션을 뜻하는 ‘오뛰 꾸뛰르’의 향수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오뛰 퍼퓨머리의 특징은 각기 다른 향의 향수를 똑같은 디자인의 용기에 넣어 통일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하나만 사도 무방하지만 수집의 개념으로 콜렉션에 포함된 모든 향수를 구매하도록 브랜드 측은 유도한다. 보통 한 병당 20~30만 원에 달하는데, 한 콜렉션을 모두 구매할 경우 수 백 만원이 넘는다.
샤넬은 22개의 향수로 구성된 ‘레 익스클시브(Les Exclusifs)’라는 오뛰 퍼퓨머리 콜렉션을 판매한다. 소수를 위한 콜렉션답게 특정 매장에서만 제품을 판매한다. 지방시의 오뛰 포퓨머리 ‘라뜰리에’(L‘Atelier) 역시 판매채널이 제한적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영국의 단 40개 유통채널에서만 판매된다. 이밖에 디올, 아르마니 등도 오뛰 퍼퓨머리를 보유하고있다. 샤넬, 지방시 등은 올해 오뛰 퍼퓨머리 라인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단일 향수를 초고가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톰 포드 뷰티의 250ml짜리 향수 ’네롤리 포르토피노 EDP‘ 가격은 무려 65만 원이다. 톰 포드 뷰티 관계자는 “보통 향수보다 크기가 훨씬 커 가격이 비싸도 집 꾸미기용이나 디퓨저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명품 브랜드들이 향수 가격을 높이고, 콜렉션으로 한꺼번에 판매하는 등 초고가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프리미엄 니치 향수가 무서운 기세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명품 브랜드 대부분은 향수 가격을 10만 원 안팎으로 책정했다. 향수를 명품 브랜드 입문단계에서 고객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이 쓰지 않는 개성 있는 향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꾸준한 매출을 가져다 주는 ‘캐시카우’로 여겨졌던 명품 브랜드의 향수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5월) 명품 브랜드 라이선스 향수 매출 성장세는 8.8%로, 지난해(8.5%)보다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19.3%를 기록한 향수 전체 성장세보다도 월등히 낮다. 반면 조말론, 딥티크와 같은 니치 향수의 성장세는 25.3%에 달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자신만의 향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며
명품 브랜드 향수를 위협하는 니치 향수에 대응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들이 잇따라 초고가 정책을 펼치는 배경이다.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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