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별로 없어 우리나라도 ‘양적완화’를 고민할 타이밍이 됐다. 한국은행이 국고채를 매입해 우리 경제 전체를 부양하는 게 효과적이나 만약 특정 은행 채권을 매입하거나 특정 부실업종에 지원하려면 사회적 공감대를 먼저 구해야한다.”
한국판 양적완화론에 대해 정치권에선 찬반 양론이 뜨겁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석좌교수,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한국경제학회장 출신인 김정식 연세대 교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문관인 김진일 고려대 교수,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경제사학회장을 역임한 최배근 건국대 교수 등 통화정책 전문가 6인에게 양적완화 방법론을 물었다.
◆금리인하 효과는 제한적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당면한 구조조정 필요성과 가계 빚 급증에 뾰족한 정책적 대안이 없다는 현실 인식에 공감하면서 ‘양적완화’라는 단어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내외 금리차가 확대되면서 자본 유출이라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양적완화가 내수 살리기에 단기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용어를 국내에서 처음 사용한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가계 빚이 가계 빚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한국은행이 발권력으로 뒷받침해서 원인을 해소시키지 않고서는 장기불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우리 경제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수출을 회복세로 돌려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경쟁국인 일본과 비교한 원·엔 환율이 매우 중요하며 15개월째 마이너스인 수출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발권력을 동원해 원화값을 절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부양 인플레이션 유발 목적으로 해야
다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특정 부문 채권인 산은채나 주택담보대출증권 등을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들 채권을 사회적 논의 없이 매입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다, 중앙은행이 불필요한 신용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6명 중 3명이 국고채 등을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했고, 2명은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것을 전제로 특정 대상을 한정해 유동성을 주입하는 것에 찬성했다.
우선 경제예측전문가인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석좌교수는 “양적완화를 하려면 목적부터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미국의 경우 대공황과 디플레이션을 막고 고용창출하자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이 중요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채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성환 원장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한은이 이를 매입한 다음 정부가 그 돈으로 산은과 주택금융공사를 지원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문관인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특정 회사채를 인수하자고 말하고 싶다면 먼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 가계 빚 해결 한계가구에 포커스해야
1200조를 넘어선 가계 빚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직접 인수하는 방안을 두고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특히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작년 안심전환대출을 시행할 당시를 볼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는 30년 만기 상환까지 가능하게 제도를 정비했지만 원리금 부담이 높아 상당수가 갈아타지 못했고 결국 판매목표량 목표를 못 채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미 정부 지원에 힘입어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사람은 다 구제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작년 3~4월 정부가 선보인 안심전환대출은 일부 은행권 변동금리 또는 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2%대 고정금리 분할상환 대출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으로 2차 판매 당시 20조원 한도를 채우지 못한 바 있다. 이어 최 교수는 “단순히 한은이 MBS를 사주는 것만으로는 직접 가계 빚 부담을 덜어줄 수 없다”면서 “차라리 공공금융기관인 주택금융공사에 한은이 출자해 주금공이 은행으로부터 가계대출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은 “만기 전환은 상환능력이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고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 위험군인 저소득층에는 혜택이 못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조준한다면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한계가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리인하 실탄 아껴야
기준금리를 낮출 때까지 낮춘 뒤 유동성을 주입하는 미국식 방안에 대해서는 한국 현실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다소 많았다. 최배근 교수는 “금리는 경제에 전 방위적으로 영향을 줘 부작용이 생긴다”면서 “필요한 곳에만 유동성을 공급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성환 원장은 “사실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은의 직접 유동성 공급으로 이해하면 된다. 금리인하와는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진일 교수는 “기준금리 인하가 효과를 보려면 낮췄을 때 경제심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하는데 현재로선 없는 것 같다”며 “오히려 기준금리 인하라는 실탄을 절약하는 한편 특정 대상에 한정해 유동성을 주입하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김정식 교수는 자본 유출입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기준금리 인하에 조건부 찬성했다.
반면 손성원 교수와 오정근 교수는 적극적 양적완화를 강조했다. 손 교수는 “제로 금리를 하지 않고 양적 완화를 하는 것은 총알만 낭비하는 것”이라면서 “먼저 제로금리를 단행해 ‘시장에서 한은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양적완화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오정근 교수는 “금리를 낮추고 채권을 매입하는 것을 병행해야한다”고 설명했다.
◆ 부동산 버블 재정건전성 유의해야
만약 한국판 양적완화가 실시될 경우 부작용으로는 궁극적으로 돈이 부동산으로만 흐를 염려가 제일 많이 꼽혔다.
김정식 교수는 “양적완화로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 될 수 있는데 이는 다시 버블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부동산 값이 튀지 않도록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손성원 교수는 “양적완화는 단기처방이란 점을 명심해야한다”면서 “더욱이 양적완화는 펀더멘탈을 해결할 수 없어 구조조정과 재정건전성을 함께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손 교수는 또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물가가 올라가고 수 년 뒤에는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은퇴한 이자소득자나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될
[이상덕 기자 /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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