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재 유통 산업에 디지털화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현재 전체 유통시장 중 디지털 유통 비중은 약 15% 수준이다. 한국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유통 산업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디지털 유통은 전체 유통 시장의 26% 수준으로 성장하며, 그 중 모바일 거래가 전체의 6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례가 없는 성장 속도다. 한국이 세계 디지털 유통의 방향을 가늠하는 풍향계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유통 시장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 달러를 넘어서는 시점에 구조적 변곡점을 겪게 되는데, 한국은 그 변곡점과 디지털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유통 생태계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보다 한국의 디지털 유통 시장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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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강희석, 송지혜 파트너 |
◆소비 유통업계 “디지털 강국 코리아” 착시 현상 벗어나야
문제는 이러한 표면적 고성장에 한국 디지털 시장의 문제점이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디지털 상거래는 침투율만 높지 발전 단계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뒤처진다. ‘디지털 강국 코리아’ 착시 현상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우선 디지털 상거래의 사업 모델이 입주 업체에게 사이버 공간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부동산형’ C2C 플랫폼 위주로 발전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아마존이나 일본의 라쿠텐과 같이 직접 유통 영업을 하거나 입주 업체를 엄선하는 모델은 발전이 더딘 상황이다. 아마존이나 라쿠텐과 같은 모델은 오히려 국내 소셜 상거래 업계가 그 역할을 하려고 한다. 이들은 아마존의 편의성과 라쿠텐의 엄선된 상품 구색에 준하는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전히 상품 기획이나 고객 서비스, 재고 관리 등에서는 역량의 편차가 크다. 두 번째 이유는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주도하는 온-오프 연계형 상거래의 존재감이 아직까지는 미미하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테스코(Tesco) 온라인의 매출이 아마존의 40% 이상에 달할 정도로 디지털 상거래 시장이 순수 온라인 업체와 거대 유통업체의 팽팽한 경쟁 속에서 진화해 왔다. 세 번째 이유는 디지털 유통의 진화와 소비자의 디지털 행태를 반영한 소비재 기업들의 사업전략 변화가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일본은 애플의 온라인 매장이 자국내 3위의 디지털 상거래 플랫폼으로 자리할 정도로 제조사의 D2C(Direct to Consumer) 플랫폼이 강력하다. 한국은 아직 그만한 존재감을 가진 소비재 브랜드 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소비자의 참여에 기반한 제품 개발이나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자가 보이는 소비행태를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는 역량도 일천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소비 유통 시장은 이제 막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다.
◆소비 유통업의 디지털 혁신 3대 공식: 참여-판매-학습 (Engage-Sell-Learn)
급변하는 디지털 상거래 시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참여(Engage), 판매(Sell), 학습(Learn)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순환하면서 기업의 디지털 모델을 완성해야 한다.
참여(Engage)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고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소비재 업체는 소셜 리스닝(social listening), 크라우드 소싱을 통한 상품 개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디지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엔터프라이즈에서의 마케팅은 단순한 브랜드 구축을 넘어 상품 기획, 고객 피드백 수렴 등 고객 경험 전반으로 확장하며 마케팅의 전반적 영역을 재정의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객 참여가 1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강력한 참여 플랫폼(engagement platform)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벅스의 “마이스타벅스” 플랫폼이다. 스타벅스가 고객 로열티 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투자를 감행한 것이 자체 리워드 프로그램(마이스타벅스리워드) 의 디지털화이다. 고객의 반복 방문이 가장 많은 마이스타벅스리워드를 가장 주축이 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강화한 후, 이를 커뮤니티(마이스타벅스아이디어)-커머스(모바일오더앤드페이)와 연계, 통합하며 강력한 참여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마이스타벅스아이디어는 연간 20만건 이상의 고객 아이디어를 청취하고 토론하는 참여 프로그램으로 부상했고, 커머스 역시 전체 주문 중 20% 이상을 모바일 주문/결제로 처리하며 탐색-결제-공유의 완결된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충성 고객 기반을 더욱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판매(Sell) 측면에서는 오프라인과 모바일 또는 웹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재정의하고 전방위적인 공조 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소비재 업체 입장에서는 디지털을 통해 대고객 채널을 직접 장악하는 D2C 기회가 증가하기에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판매 채널의 다변화를 넘어 새로운 사업 모델까지 고려할 수 있게 된다. 버버리는 패션업계를 강타한 디지털의 위협을 매장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해 오히려 차별화 기회로 활용한 대표적인 경우다. 버버리가 2012년 오픈한 리전트 스트리트 매장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되어 판매와 고객 충성도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고객이 탈의실에서 옷을 입어볼 때마다 디자인, 원단, 재단 관련 멀티미디어 컨텐츠가 공유되고 점원들은 고객이 웹상에서의 검색과 이전에 입어봤던 옷의 데이터까지 파악하며 상담을 해준다. 한마디로 매장 경험이 디지털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차별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D2C 사례는 네슬레의 고메 커피 캡슐 브랜드인 네스프레소다. 이 회사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유통을 넘어 직접 고객 접점을 구축했다. 네슬레는 1998년 네스프레소의 온라인 채널을 런칭한 후 오프라인 매장은 브랜드 정체성 전달과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는 플래그십 매장 위주로 재편했다. 또한 온라인을 기반으로 고객의 지속적 재구매와 교차 구매를 유인하는 이원적 채널 전략을 전개했다. 그 결과 현재 네스프레소 매출의 약 60%가 온라인을 통해 창출되고 있으며, 네슬레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기존 식품 사업 분야에서 가질 수 없었던 충성도 높은 고객 대상 접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디지털 상거래에 따라 물류 재고관리 인프라의 혁신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자사의 사업 모델에 맞는 후선 인프라를 면밀히 정의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쿠팡 등 주요 유통 업체들이 공격적인 물류 인프라 투자를 전개하고 있지만 빠르고 편리한 배송에 대한 기대와 함께 투자 효율성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베인의 분석에 따르면 디지털 상거래가 전체 10% 이상으로 확대되고, 직매입과 재고 관리 역량이 동시에 확보되어야 온라인 전문 물류·배송 인프라의 투자 효율성이 극대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해외의 경우 자사의 온라인 사업 규모, 상품이나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형태의 배송 모델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성패 역시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습(Learn)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축적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판매와 운영에 활용하는 기업이 결국 디지털 선순환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미 상용화가 된 SNS 데이터 외에도, 최근 디지털 트래픽의 50% 이상이 고화질 멀티미디어 컨텐츠가 차지하고 있다. 또한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향후 35% 이상 급증해 이른바 M2M(Machine to Machine)을 통한 고객의 사용 행태와 구매 행태 파악이 용이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객 데이터를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함에도, 많은 기업들이 아직 빅데이터를 ‘기존보다 많은 데이터’ 정도로 인식하거나 ‘단순한 유행’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비 유통 기업들은 고객 데이터에 대한 기술일변도 접근에서 벗어나 면밀한 사용 케이스(Use Case)의 이해에 기반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프레임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고객 데이터 통합,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조직과의 유기적인 업무 체계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맥도날드는 고객 소비 패턴과 매장 운영 관련 빅데이터를 적용해 마케팅 판촉 자원을 재배분하고 인기 메뉴에 대한 수요를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물론 매장별 시설물 배치까지 최적화 하는 등 운영 효율성 제고까지 달성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이 단순히 고객 접점뿐 아니라 사업 운영 모델의 최적화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향후 3-5년간 한국 소비재 유통 산업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
[베인앤드컴퍼니 송지혜 파트너, 강희석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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