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재량권을 많이 줬더니 결국 이런 문제들이 생기네요.”
최근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조달 문제를 점검하던 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말이다. 그는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기들이 필요한 물품을 자체 규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구매하도록 해 재정 효율성을 높이도록 한 자체조달시장 제도가 결국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조달사업법에 따라 중앙 부처 등 국가기관은 국가에서 단가를 정해놓은 이른바 ‘단가계약’을 하거나 1억원 이상의 물품이나 용역을 구매할 경우 모두 조달청을 통한 중앙조달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반면 지방계약법에 따르는 지자체는 단가계약의 경우에만 중앙 조달시장을 활용하고 나머지 물품, 용역이나 신규 시설공사 발주를 할 때는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다. 2005년에는 턴키·대안입찰발주, 200억원 이상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대상공사는 중앙조달 시장을 의무적으로 이용해야 했지만 점차 의무규정이 완화돼 2010년부터 전면자율화로 전환됐다. 원할 경우 언제든 중앙조달 시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지자체에는 의회라는 견제장치가 있고 스스로 역량을 갖출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적 배경이 있었다.
공기업은 단가계약도 자율로 할 수 있고 발주기관의 재량이 지자체보다 더 넓게 인정된다. 민간에 가장 가까운 조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뒤집어서 말하면 발주기관이 횡포를 부리기 가장 쉬운 곳인 셈이다. 중소기업간 경쟁물품을 2억 1000만원 이상 구매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주기관의 완전 재량권이 보장된다.
공기업과 지자체의 ‘입찰 갑질’ 문제가 심각해지자 조달청도 제도 개선에 나섰다. 올해 1월 1일부터 조달청을 통해 물건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중앙조달’ 시장에 적용해온 ‘구매규격 사전공개 제도’를 자체조달 시장 입찰에도 적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구매규격을 특정기업 제품에 유리하게 만드는 소위 ‘스펙 알박기’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공기업·지자체가 입찰공고를 내기에 앞서 공고안을 미리 공개해 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 공고안을 내도록 하는 방식이다. 사전공개안이 특정업체에게만 유리하거나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는 경쟁업체들은 공고 수정을 요청할 수 있고, 공기업·지자체는 이를 반영해야한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한 중앙부처 담당자는 “이상적인 제도이기는 한데 경쟁업체가 뻔히 누군지 아는 시장에서 어느 누가 ‘찍히려고’ 불공정 시정 요청을 하겠느냐”며 “원천적으로 갑질을
고상진 경희대학교 정책학과 교수는 “조달 전문기관으로서 조달청의 역량을 키워나가되 개별 기관이 재량권을 남용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감사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시영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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