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레베카 올슨이 미국 네브래스카 주 세인트 클레멘트 병원의 최고경영자(CEO)로 새로 부임한 직후 일어난 일이다. 한 사무직원이 관리 부원장인 리처드 밀러를 성희롱과 차별대우로 고발했다.
사실 CEO인 올슨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밀러를 고발한 사무직원 역시 신체적 장애가 있어 올슨은 피해자의 감정과 의식을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해당 병원에서 25년 동안 근무해 온 밀러는 올슨이 부임하기 전까지 병원 직원들이 차기 CEO라고 예상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업무를 맡는 인물이었다. 마지막으로 경영진들은 올슨을 영입하기 몇 주 전부터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한마디로 올슨이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일만한 상황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고발 사건을 마주한 올슨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녀는 대놓고 밀러를 해고하지도, 성희롱으로 그를 고소하지도 않았다. 대신, 면밀한 조사와 준비를 하면서 해당 병원 이사들과 긴밀히 상의한 뒤 ‘권고사직’이란 결론을 내렸다. 결국 밀러는 권고사직을 받아들였고, 올슨은 이 일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병원의 이미지를 보호하며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밀러의 행동에 대한 증거는 충분했다. 올슨은 그를 해고하거나 고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올슨은 ‘정의의 사도’가 되지 않고, 뒤에서 조용하게 이 사건을 해결했다. 즉, 그는 ‘조용한 리더’로 행동한 것이다. 이처럼 조직 곳곳에는 모두가 아는 영웅이 되는 대신에 티내지 않고 리더십을 펼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CEO 외에도 관리자 등 조직 내 수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리더’가 될 수 있다.
↑ 조지프 바다라코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 |
- ‘조용한 리더’(quiet leader)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어려운 상황(tricky situations)에서도 묵묵히,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바로 ‘조용한 리더’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투입된 조용한 리더들은 직장 동료들과 협력할 방법을 찾아서 해당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도 효율적이고 책임감을 갖고 말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조용한 리더들이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기 힘들다.
-왜 어떤 사람들은 나서지 않고 뒤에서 ‘소리내지 않고’ 리드하는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타인들을 이끄는 것이 자연스러운 리더십 스타일이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내향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용한 리더들은 경험을 통해 (영웅적인 리더가 되지 않고) 조직 안에서 조용하게 리드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러한 리더십을 펼친다. 또한 조직에서 ‘조용하게’ 일을 하는 문화가 있어서 조용한 리더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경험을 통해 조용한 리더십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깨닫는 경우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경험상으로 봤을 때 조용한 리더가 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전에 다른 리더십을 펼친 경험이 있다. 가령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이끈 리더십을 보였지만 이런 적극적 리더십이 결국에 상황을 악화시킨 경험이 있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이 적극적인 리더십에서 조용한 리더십으로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을 바꿨을 수 있다.
-이러한 조용한 리더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업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다(getting the job done). 본인이 맡은 일에 집중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해당 업무가 기여하게 만든다. 자신의 포지션에 ‘장기 집권’을 한다든지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는 것은 조용한 리더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리더들을 이끄는 또 다른 리더들이 있는가. 조용한 리더들은 누구를 통해 영향을 받고 뒤에서 리더십을 펼치는 것일까.
▶조용한 리더들은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주의 깊게 살핀다. 이 자체만으로도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비유하자면 조용한 리더들의 행동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의 모험: 보헤미아의 스캔들’ 편에서 셜록이 왓슨을 비판할 때 한 말과 관련이 있다. 바로 “넌 눈으로 보지만 관찰하진 않아(you see but you do not observe)”다.
-리더가 너무 티 내지 않게 일하면 직원들과 해당 리더 사이에서 오해가 생기진 않을까.
▶아직까진 조용한 리더에 대한 직원들의 엄청난 오해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조용한 리더가 다른 타입의 리더들보다 자신이 이끄는 팀, 혹은 부서의 능력을 찾아 이끌어내고, 팀원들끼리 협력하게 만들며, 심지어는 창의성을 유발하는데 더 뛰어나다는 증거는 많다. 예를 들어 프랜체스카 지노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가 수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용한 리더들은 직원들이 생각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틈(space)’을 더 준다고 한다. 또한 조용한 리더들은 직원들이 본인의 의사를 더 편하게 밝힐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만으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창출될 수 있다.
대다수의 경우 ‘영웅적인’ 리더들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자신감이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하면서 찾아오는 문제들은 해결하기가 많이 복잡하다. 이 때문에 한 명의 천재(본인을 천재라고 여기는 ‘영웅적인’ 리더)만으론 이런 비즈니스 문제들을 해결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용한 리더의 노고를 알아채긴 힘들다. 직장에서 조용한 리더의 수고를 어떻게 깨닫고 이에 대한 인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려운 문제다. 대부분의 경우 조용한 리더십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인정을 덜 받고 이런 리더들에게 돌아가는 보상(reward)도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인재들이 어떤 스타일로 일을 하는지를 상사가 눈 여겨 보는 것이다. 또한 누가 어떠한 업무에 기여하는지도 상사들은 집중하며 봐야 한다.
조용한 리더들의 기여도를 알아채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힘든 여건(challenging situation) 속에서 그들을 투입시키고 그들이 투입된 후에 일이 얼마나 진행되는지, 또 결국에 일이 잘 마무리 되는지를 상사가 집중적으로 보면 조용한 리더들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결국에는 조직 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상사가 있어야지 조용한 리더들의 존재감이 밝혀지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보상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다.
조용한 리더라고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다. 완전히 자기주도적인(self-directed)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들 자신의 노고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언뜻 보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조용한 리더십이 필요해 보인다. 일상적인 직장생활에서 조용한 리더들은 조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특별한 상황이나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만 조용한 리더십의 효과가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용한 리더들은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조직이 직면하는 문제들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관리자를 비롯해 직급이 높은 사람들의 책상 위에 놓여지기 마련이다. 관리자들은 문제가 작든 크든 간에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가장 잘 협력하면서 일할 방법을 찾고, 팀원들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도록 이끌어내며, 팀원들이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조용한 리더들이 하는 일이다.
-그래도 조용한 리더십보다는 일반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있다. 중대한 선택(decision)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상황이다. 이 선택이 잘못됐다고 판단된다면 사람들은 이를 꼬집어서 이야기해야 한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결정이 잘못돼 보인다면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직원들의 의무다.
-만약 예상했던 것과 달리 본인의 결정에 대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조용한 리더들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자신의 뜻과 다르게 일이 잘 진행되지 않다고 하더라도 조용한 리더들은 낙담하지 않고 업무를 달성하도록 계속 노력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도록 창조적인 대안(creative alternative)을 찾는다.
-조용한 리더들에게 가장 힘든 상황이 있다면.
▶조용한 리더 중 일부는 내성적인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회의를 할 때 더 직설적이고, 더 즉흥적으로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힘들다.
-어떻게 내성적인 조용한 리더가 회의실에서 더 직설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조언을 하겠다. 첫번째는 상사에게 제안하는 조언이다. 평소에는 자신감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데 회의실에서만 입을 닫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사들은 이 사람이 회의에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 자세히 보면 내성적인 사람이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듯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상사가 이를 목격한다면, 해당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대부분의 경우 내향적인 사람들은 철저히 준비한 상태로 회의에 참여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린다. 안타깝게도 머릿속에서 알맞은 타이밍을 생각하는 동안 회의 주제는 다른 것으로 바뀐다. 즉, 결국에는 타이밍을 보느라 말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믿고 회의 시간에 할 말이 있으면 ‘질러야’ 한다.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수영장에 뛰어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용한 리더인 CEO와 조용한 리더인 관리자(manager)에 차이점이 있나.
▶CEO는 더 “조용하게” 일을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직원이 CEO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렇지만 CEO의 말과 행동이 곧이 곧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헨리 포드가 본인의 자동차 타이어에 대한 불평을 했다. 그 다음날 포드자동차는 브라질의 한 고무 재배장을 사들였다고 한다. 물론 약간 과장된 얘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CEO의 말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일부가 얘기되지 않거나 부풀려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용한 리더십은 리더십 훈련을 통해 터득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런 타입의 리더십은 배워서 터득할 수 없다 생각하는가.
▶훈련을 통해 터득될 수 있지만 지극히 제한적이다.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을 듣는 직원들은 조용한 리더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조용한 리더십의 효율성이 잘 나타난 케이스스터디를 갖고 이에 대한 토론을 펼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하루하루, 그리고 상황 상황에 따라 내부에서 업무를 어떻게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트레이닝’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장 동료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조용한 리더들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고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조용한 리더들을 찾아서 그들이 회의실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힘든 상황, 혹은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 면밀히 살펴봐라.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 he is...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와 DBA(경영학 학사)를 취득한 조셉 바다라코 교수는 기업윤리, 전략, 매니지먼트를 가르치며 경력을 쌓았다. 과거 하버드대학교 MBA 프로그램의 학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기업윤리, 리더십, 전략, 의사결정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윤선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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