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사는 27세 남성이 이미 11개월 전에 지카바이러스에 걸렸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을 자주 가는 지역에 1년 전부터 지카바이러스 위험이 있었고 또 지카바이러스에 걸렸다하더라도 일반적인 뎅기열 증상으로 판단해 그냥 넘어갔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지카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확인한 에이크만분자생물학연구소도 보고서를 통해 “이 지역 지카바이러스는 남미와는 달리, 뎅기열 감염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며 “가벼운 증상 때문에 다수 환자가 진단받지 않은 채 그대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실제 전파 상황을 알아내고 모니터할 수 있는 감시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1일 범부처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대응태세에 들어갔다. 특히 예방과 방역 업무를 총괄하는 질병관리본부는 예상되는 유입경로별 대응책을 마련했다.
우선 질병관리본부는 지카바이러스가 국내 유입될 가능성 중 여행객으로 인한 유입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지카바이러스를 신속하게 ‘제4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주말 사이에 지카바이러스가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면서 신고체계에 대한 문의 전화는 있었지만 아직 의심 신고는 접수된 게 없다”고 밝혔다.
각 병의원은 지카바이러스 의심 환자가 발생할 경우 보건소 등을 통해 보건당국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 이후 혈액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국립보건연구원 신경계바이러스과에서혈청 검사를 실시해 검사결과가 나온다. 이 과정은 보통 검체가 들어온 이후, 통상 6~9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지카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별로 점검하면 국내 방역체계로 이를 막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게 문제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등 호흡기 질환에 발생했을 때는 규정에 따라 비행기 소독 등을 실시했지만 지카바이러스는 그 매개체가 모기와 성관계, 혈액 간염 등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대비는 준비하고 있지 않다. 중남미 등 유행 지역을 방문하거나 경유한 여행자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해 증상 여부 등을 체크해 국내 유입을 막는다는 계획 정도다.
문제는 지카바이러스가 발열, 발진, 충혈 등 증상 외에 특별한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양성 환자는 유전자 염기서열에 대한 확인을 거쳐야 하는 만큼, 사실상 모니터링이 제대로 작동할 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또 잠복기가 길고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80% 가까이 되서 공항, 항만 등에서 감염자를 걸러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카바이러스의 다른 경로는 헌혈 등으로 인한 사람 간 감염의 경우다. 이에 대한 대비로 질병관리본부의 대책은 해당 국가 여행객들에 대해 헌혈을 자제할 것을 권고한게 전부이다. 현재 캐나다는 지카바이러스 감염자에 대해서 치료 완치 후 1개월까지 헌혈을 금지하고 있다.
더 걱정되는 부분은 모기 유충이나 알을 통해 지카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모기가 국내로 유입되는 경우다. 질병관리본부는 유충으로 인한 가능성은 있지만 모기가 활동하는 기후 조건과 현재 국내의 기후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유충으로 인한 국내 유입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우리나라 최대의 목재 수출국인 만큼 목재를 통한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물학자들은 보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현우 책임연구원은 “모기 유충은 어렵지만 알이 수출품에 묻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의 목재 등 천연자원 수출품에 모기 알이 붙은 채 한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책임연구원은 “유충이 부화하지 않은 알의 형태로는 최장 6개월까지 버틸 수 있다”며 “물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모기 알은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철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아파트 배수구나 정화조에서 집모기가 살아남 듯 부분적으로라도 모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모기가 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집트 숲 모기는 한국에도 존재하는 흔한 종”이라며 “인도네시아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 알이 들어오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책임연구원은 “수입품을 통해 모기 알이 유입될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방역 시스템이 잘 돼있어 모기 알이 걸러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수입목재는 수출국 현지에서 소독하는데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 수입목재를 관리하는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목재를 수입하기 전 염소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있어 그곳에 모기나 모기 유충이 붙어있을 위험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목재 등 수입품을 매개로 한 유입에 대해서도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도 대응해야 한다”며 “농림부등 관계 부처와 대응방안을 찾겠다”고 설명했다.
국민안전처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질병관리본부, 법무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카바이러스 감염예방 및 대응체계를 점검했다.
안전처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지카바이러스 발생 차단대책과 상황관리 등 대응을 총괄한다. 법무부는 입국자의 출입국 정보를 방역당국에 제공하고, 문체부는 예방수칙과 행동요령 등을 국민에게 홍보한다. 외교부는 중남미 등 위험지역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감염예방대책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부는 중남미와 동남아 등 위험지역 여행시 안전한 해외여행을 위한 예방수칙 준수를 당부하는 등 해외여행객 대상 지카바이러스 예방홍보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임신부의 경우 중남미 여행을 자제하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장, 모기기피제 사용, 외출이 불가피한 경우 긴소매, 긴바지를
김희겸 안전처 재난관리실장은 “질병관리본부와 관계부처 사이에 신속한 정보공유 및 협력체계가 중요하다”며 “과도한 불안심리가 확산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유사시 신속하게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동인 기자 / 이영욱 기자 /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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