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의 메카’ 포항시 영일만 신항. 중소기업 알펙은 이 부근에 2009년 8월 축구장 4~5배 정도 크기의 공장을 세우고 석유화학 발전플랜트 제조에 뛰어들었다. 중후장대 산업인 만큼 두산중공업 등 대기업 계열회사들이 진출해 있어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당시 경쟁업체가 11곳에 달했을 정도로 많았던 탓에 업계에선 ‘알펙이 얼마 못가 와해될 것이다’는 비아냥 섞인 소문이 나돌았다.
6년여가 흐른 지난해 말까지 알펙을 포함한 유화플랜트 업계 12개사 중 7곳이 문을 닫았다. 유가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유화플랜트에 대한 투자와 발주가 연쇄적으로 감소하면서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결과였다. 살아남은 5곳 중 순수 중소기업은 알펙뿐이다. 치킨 게임을 견뎌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는 평가와 함께 주변의 걱정어린 시선을 180도 돌려놓은 알펙은 새해 들어 공장을 풀가동해도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남들은 공장을 팔기 바쁜데, 알펙은 이웃한 대형 공장까지 인수했다. 100% 수출기업으로서 지난해 해외에서 1000억원 가량의 물량을 수주해놓은 덕분이다. 올해 수주 목표는 1400억원. 지난해 750억원을 기록한 매출은 올해 1000억원으로 대폭 늘려잡았다. 중소기업이 중후장대 산업에서 창업한지 채 7년도 안돼 1000억원의 매출 고지를 바라보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케이스다.
알펙이 대기업군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을 넘어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글로벌 메이저업체들과 직접 거래하려 하지 않고, 이들도 모두 인정할 만큼 원천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INEOS 테크놀로지스’의 인증을 먼저 받는 전략을 썼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INEOS는 석유화학·정밀화학·석유제품 분야 글로벌 강자다. 지금은 엑슨모빌, 토탈, BP 등 세계 10대 오일 메이저와 일본 사사쿠라 등 엔지니어링 분야 글로벌 25개사가 모두 알펙 고객사다.
김철 알펙 대표는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용접 등 다양한 기술력을 보유했어도 처음부터 메이저 업체들을 뚫으려고 했다면 제풀에 지쳤을 것”이라며 “누구나 공히 인정하는 업체로부터 먼저 기술인증을 받고 나니 영업이 술술 뚫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알펙의 끈질기고 과감한 영업력은 성장의 밑거름이다. 알펙은 3년에 걸쳐 기술력을 인정받은 끝에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해수담수청(SWCC)이 발주한 세계 최대 규모의 다단효용방식(MED) 해수담수화 설비에 장착되는 플랜트를 수주(1차 250억원)해 올 하반기 시공에 나선다. 길이 87m, 폭 35m, 높이 18m급 담수설비는 하루 30만명이 마실 수 있는 9만t급이다. 김 대표는 “SWCC측이 설계업체인 사사쿠라측에 일본 회사에 제조를 맡겨줄 것을 주문했는데도 사사쿠라는 알펙에 맡겼다”며 “우리가 기술력을 토대로 끈질기게 구애를 한 결과”고 했다.
알펙이 생산하는 플랜트 제품은 유화플랜트 설비에 들어가는 열교환기(heat exchanger)와 응축기(condenser), 담수화 설비에 들어가는 증발기(evaporator) 등 20여 종이 넘는다. 크기는 대부분 컨테이너만하다. 열교환기는 고온액체와 저온액체와의 2개의 유체 사이에서 열 이동을 하는 장치이며, 응축기는 압축기에서 보내온 고온·고압의 냉매를 응축 액화하는 부품을 말한다. 증발기는 바닷물을 가열해 염류를 제
김 대표는 “유가는 바닥이고 플랜트와 석유화학, 조선해양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올해가 가장 힘든 환경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면서도 “원가혁신과 생산 전공정 효율화를 추진 중이고, 이미 확보한 일감을 두루 고려하면 올해 무난히 1000억원 매출을 달성하리라 확신한다”며 활짝 웃었다.
[포항 = 민석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