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상용화를 위한 현대로템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간의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따라 오는 4월부터 본격화되는 글로벌 고속철 수주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5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현대로템이 개발한 시속 250㎞급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해무(HEMU)-250’ 30량을 오는 2020년 개통 예정인 경전선 부산 부전역~마산 복선전철 구간에 투입하기 위해 현대로템과 코레일이 진행해온 수주 협상이 가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근 결렬됐다. 코레일이 지난해 11월 1량당 추정가격 44억원으로 입찰 공고를 낸 이후 단독 응모한 현대로템과 수의계약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양측이 생각하는 가격차가 컸다는 후문이다.
현대로템 측은 “순수 국산 기술과 부품으로 만들어진 동력분산식 열차이다보니 단가가 다소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 측은 “공개입찰은 국제시세가 기준인 만큼 현대로템에 특혜를 줄 수는 없었다”고 결렬 이유를 밝혔다.
당초 정부가 경전선에 서둘러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를 투입하기로 한 것은 최근 뜨거워지는 글로벌 고속철 수주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고속열차를 개발했지만 동력집중식에만 집중하다가 뒤늦게 지난 2012년에야 현대로템이 동력분산식 개발에 성공했다. 최근 고속철의 추세는 동력집중식에서 동력분산식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동력분산식 고속철 개발이 늦은데다 상용화 실적마저 쌓지 못했기 때문에 국제 수주전에서 ‘주요 선수’로 참여하지 못했다. 주요 국제입찰에서는 해당 차량의 수주 실적을 제출하지 못한 업체에게 감점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은 상용화 실적을 발판으로 성큼 앞서가고 있다. 지난 2008년에야 고속철도를 개통한 중국은 자국내에 1만7000㎞가 넘는 고속철을 깔며 외국기업들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강자로 거듭났다. 지난해 태국 농카이~방콕~라용 867㎞ 구간 철도 복선화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9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스앤젤레스 370㎞ 구간을 수주하며 미국 시장 진출에까지 성공했다. 일본 역시 지난해 5월 태국 치앙마이~방콕 670㎞ 구간의 고속철 사업을 따낸 데 이어, 12월에는 뭄바이와 아마다바드를 잇는 인도의 첫 고속철도 수주에 성공했다. 뭄바이~아마다바드 고속철 건설에 소요될 자금은 150억달러로 추산된다.
반면 한국은 미국 보스턴과 인도 뭄바이 전동차 사업 수주에서 고배를 마신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는 홍콩 전동차 수수전에서 중국중차(CRRC)에 밀렸다. 고속열차의 경우 상용화 실적이 없다보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2020년 개통하는 경전선과 서해선에 서둘러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를 채택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번 가격 협상 결렬로 또다시 첫 상용화가 늦어지게 됐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국토부와 코레일은 경전선 고속열차 구입 예산 증액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이미 입찰이 한 차례 결렬된 만큼 재입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국제 공개경쟁입찰인 만큼 40일간의 입찰공고를 비롯해 절차 진행에만 최소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미 초대형 수수전은 눈앞에 다가온 상태다. 당장 오는 4월께 터키 철도청이 발주하는 앙카라~이즈미르(606㎞), 앙카라~코냐(212㎞) 구간, 총사업비 32조원(건설비용 포함) 규모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수주전을 앞두고 있다. 연말에는 총연장 324㎞의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사업 입찰이 예고돼 있다. 이 사업은 총 사업비만 14조3000억원에 이른다. 현재 정부는 현대로템과 국민은행 등이 참여하는 민관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밖에 태국 호치민~나짱 남북간 준고속철도(420㎞)사업도 연내 발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당장 상용화 실적 제출은 어렵겠지만 최대한 수주를 앞당겨 ‘상용판매 실적’이라도 제출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라며 “재입찰 절차를 서두르도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용어 설명>
▷ 동력분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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