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앞둔 1996년, 기업부채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등 중화학공업 부문의 차입을 통한 중복투자가 확대되면서 설비투자의 효율성과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1996년 기업의 자산대비 부채 정도를 나타내는 기업부채비율은 335.61%까지 치솟았고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에는 424.64%까지 올라갔다. 특히 당시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이 519%에 달했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가 난 대기업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신용 경색과 금융시장 혼란은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아갔다.
올 상반기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23.08%로 일견 외환위기때 비해 한결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한계기업으로 인한 문제가 곪아있다는 지적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매일경제신문 주최 ‘기업발 경제위기 좌담회’에서 “정상기업과 한계기업 간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부채비율이나 이자보상배율 면에서 한계기업과 정상기업 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며 “‘위기가 닥치면 늦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교훈에 따라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가 최근 한국금융연구원과 에프앤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코스피 코스닥 상장기업 1684개 회사 개발 재무제표를 전수조사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기업의 영업이익이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정의한 이 조사에 따르면 상장사 7개 가운데 1개가 3년연속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상태에 빠진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은행의 기업여신 규모도 2015년 1분기 기준 1042조7182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말보다 62조원 이상 늘었다. 기업부채는 2013년 이후 저금리 기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추세다. 최근 2~3년 사이 연 20조원가량 늘어난 것에 비하면 3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은행의 기업 여신은 2013년 이후 저금리 기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저금리 장기화가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는데 일정부분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까지는 거시적으로 성장 모멘텀을 살리는 것이 중요해 저금리를 유지해왔지만 이제는 한계기업 구조조정도 함께 생각할때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점은 외환위기 당시엔 거시적으로 큰 부담을 주지 않았던 가계부채까지 최근 들어어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기업부채 이상으로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경제주체인 기업과 가계 양축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아 신음하는 형국이다.
1995년말 기준으로 가구당 가계부채 규모는 1100만원 수준에 머물렀으나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가구당 가계부채는 이미 6000만원을 돌파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배가 채 못되게 증가했는데 빚 규모는 6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가계부채의 급증 원인에는 여러가지 지목되지만 우선적으로 주택가격상승과 함께
국제금융협회(IIF)는 한국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18개 신흥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4%로 가장 높다고 밝혔다. 이는 선진국의 평균 74%를 웃도는 것은 물론, 신흥 아시아의 40%에 비해 2배에 이른다.
[정의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