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그룹은 내부 인사를 선택했다.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는 외부의 비판에도 말이다. 디젤차량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폭스바겐 그룹은 새로운 CEO(최고경영자)로 마티아스 뮐러를 임명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과 투자자들은 조작 사태의 투명한 해결을 위해 외부 인사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지만 위기 속에 등판한 새 CEO는 폭스바겐 그룹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내부 인사였다.
내부 인사일 뿐만 아니라 지배구조에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김정진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주주 피에히 회장이 신임 경영자인 뭘러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피에히 회장은 폭스바겐 그룹 의결권을 행사(지분 50.7%)하는 소유 경영자임을 감안할 때 폭스바겐 기업 지배구조 체계가 전문경영인 체계에서 다시 오너(소유경영) 체제로 복귀한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했다.
폭스바겐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두 가지의 길 중 대주주와 가까운 내부 인물을 선택한 것을 두고 위기 타파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반면 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위기 상황 타파에 적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천영준 연세대학교 기술경영연구센터 연구원은 “위기 때 축구팀처럼 외부 인사를 쉽게 데려올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역량과 자원의 집중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영입한 CEO들에게 조직 내부의 사람들이 정보를 잘 교환하려고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외부 CEO 역시 고치려고만 하지 기존의 것들을 어떻게 조정해 활용할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외부 인사 영입의 명과 암
외부 영입 CEO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루 거스너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적자행진을 거듭하던 IBM을 회생시켰다. 82년부터 4년 간 포천지가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였던 IBM은 8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경험했다. 91년 창사 이래 최초로 28억 달러 상당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92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15%에서 10%로 하락했다. 역사상 최초로 외부 CEO 영입을 고려하던 IBM은 식품업체 RJR내비스코에 있던 맥킨지 출신의 루 거스너를 임명하게 된다. 다수 적자 사업을 흑자 사업으로 전환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93년부터 IBM의 CEO로 재직하며 IBM을 세계 최정상 기업 반열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1997년 188달러의 최고 주가를 기록하고 2000년까지 순이익을 81억 달러까지 안착시키는 등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거스너의 성공에는 외부 영입 인사로서 조직 내 관계 등에 밀착되지 않은 객관적인 시각이 한몫한다. 사실 IBM은 91년 최초 적자를 기록하기 전부터 80년대 중반이후 매출 성장률이 한자리수로 둔화되고 소비자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컸다. 하지만 비대해진 관료 조직으로 부서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용어가 생기는 등 소통이 어려워져 내부 사람으로서는 문제를 지적하기조차 어려워진 것이다. 헤드헌팅 전문 기업인 커리어케어의 박혜준 글로벌사업본부장은 이에 대해 “조직 관성이 내부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팽배해진 경우 외부 출신 CEO를 임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거스너의 뛰어난 능력과 외부인으로서 객관적인 시각이 덧붙여져 조직의 대수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사하게 볼 수 있는 사례로는 르노의 COO(최고운영책임자)로 있다가 르노와 닛산이 합병되며 2000년부터 닛산의 CEO를 맡은 카를로스 곤 르노 회장을 들 수 있겠다. 그는 2조1000억엔의 부채에 시달리던 닛산의 부채를 모두 변제하고 1년 만에 흑자 궤도에 올렸다.
외부 영입 CEO가 성공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고전하고 있던 메릴린치를 회생시키기 위해 메릴린치 역사상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였던 존 테인은 불명예 퇴진했다. 휴렛패커드 최초 외부 출신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 역시 실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김언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외부 영입 CEO의 경우 기존 조직 구성원의 협조를 구하기 힘들며 역량 및 조직문화와의 적합성 검증이 어렵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내부인사 잘 활용하려면-인력 풀의 마련
내부인사를 새 CEO로 내세워서 위기를 성공적으로 돌파하기 위한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언수 교수는 “외국의 선진 기업들은 이전 CEO가 재직할 때부터 차기 CEO의 풀(Pool, 후보군)을 잘 갖춰둬서 급작스러운 악재가 닥치더라도 준비된 CEO를 내세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급작스럽게 승진시켜 임명하는 CEO가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CEO로서 훈련을 받은 인사가 위기 상황에 대처해나간다는 것이다. 김정진 서울여대 교수는 “명문화된 승계 플래닝(Planning, 계획)을 운영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 한국에도 승계 플래닝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GE는 승계 플래닝과 인력 풀의 모범적 기업 사례다. GE는 모든 사업부의 매니저와 리더급 이상을 대상으로 2, 3명의 후계자를 선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후계자 풀에 들어온 인재들은 집중 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체계적 지도를 받는다. 인재들은 다시 즉시 직책을 승계할 수 있는 사람과 1년 간의 준비 후 승계 가능한 사람으로 구분된다.
GE의 승계 계획은 360도 평가(다양한 관계망으로부터 인물 평가) 등으로 다양한 피드백을 반영해 가장 합리적인 평가를 도출하는 인사평가제도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GE는 성공적 승계를 위해 후계자 리스트에 오른 이들에게 도전 과제를 부여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직무 경험으로 상위 직급의 업무 수행을 준비하게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역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2001년 다른 후보자와의 승계 경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둬 CEO에 오른 것이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유한 사람이 우연히 CEO 자리에 올라 기업의 성장을 이끈 것이 아니라 기업의 철저한 승계 계획 속에서 나온 성공인 것이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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