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있는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정신건강, 즉 건망증과 경도인지장애,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건망증과 경도 인지장애(치매 전단계)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평소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은 ‘혹시 치매는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호소한다.
건망증은 일상 생활에서 40~50대 이상 중·장년층과 고령층이 자주 경험한다. 예를 들어 친구 이름이 가물가물하고 TV에 등장한 연예인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주방에 뭔가를 가지러 갔다가 “내가 왜 여기왔지?”하고 주춤거렸던 적도 한두번 있을 것이다. 심지어 가스레인지 위에 국을 올려놓고 잊어버린다거나 집 현관문에 열쇠를 꽂아 놓은 채 외출하는 등 아찔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도 있다. 건망증은 개인차가 크고, 우울증이나 불안 신경증, 불면증, 폐경 후 증후군 등 질환을 가진 중년 이후 주부(주부 건망증), 기억할 게 많고 걱정거리가 많은 중년 남자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술, 담배를 많이 할수록 건망증이 더 자주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매 전단계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보면 대개 ‘스트레스성 건망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한설희 건국대병원장(신경과 전문의)은 “건망증은 일종의 생리적 뇌 현상으로 자신이 경험한 일 가운데 비교적 덜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곤 한다”며 “이는 어떤 사실을 기억하지만 저장된 기억을 불러들이는 과정에 장애가 있어서 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치매는 중요한 일이나 약속, 경험한 사건 전체를 잊어버려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건망증과 다르다. 만유인력 이론을 정립한 아이작 뉴턴도 깜빡하고 계란대신 끓는 물에 시계를 삶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건망증 경험은 흔하다.
건망증은 왜 생길까? 가장 큰 이유는 집중력 감소다. 기억이 만들어지려면 정보의 등록→저장→인출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면 이 과정이 헝클어져 건망증이 나타난다. 젊은 학생은 한손으로 필기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가정 주부는 청소를 하거나 전화를 받다가 음식을 태우는 일이 허다하다. 한설희 원장은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스트레스나 초조, 불안, 우울 등 심리적 요인들, 피로, 수면부족, 만성질환들이 늘 함께 하기 마련인데, 이 모든 것들이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기억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건망증 발생의 두번째 이유는 쉴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복잡한 일상, 업무과다 등이다. 평소 잘 알고 있는 사람 이름이나 즐겨보는 TV프로그램명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것은 입력정보 과다와 인출장애 때문이다. 인출장애는 저장된 정보 양이 너무 많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알코올이나 약물 영향을 받기도 한다.
단순 건망증을 일으키는 마지막 이유는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세월’이다. 김범태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교수는 “나이가 들 수록 신경세포의 시냅스와 수용체 수가 줄어 신경전달물질 양이 줄어든다”며 “건망증이 중년기를 지나 50세 전후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건망증은 치매로 이어지는가? 전문가들은 건망증이 모두 치매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유제춘 을지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건망증은 사건이나 경험 내용 중 일부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는 그러한 사실이나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건망증은 기억나지 않던 부분이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치매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치매는 건망증과 달리 진행성 장애이기 때문에 기억력 장애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진다. 따라서 기억력이 계속 나빠진다면 건망증보다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 서국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는 “건망증 있는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기억력이 더 떨어질 수는 있지만 다른 인지기능 장애는 발생하지 않으므로 건강한 노후생활을 누릴 수 있다”며 “하지만 치매 초기, 즉 경도인지장애 시기에는 건망증과 유사한 기억장애가 나타나므로 갑자기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경도인지장애가 의심된다면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망증은 경도 인지장애와 헷갈리지만 차이가 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있을 때, 건망증은 “아, 참 맞아, 미안해”라고 기억해내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경도인지장애는 전화를 하고, 약속을 한 일 자체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우리가 약속을 했었다고?, 우리가 전화를 했었다고?”라는 반응이 나타난다. 그 밖에 건망증은 △열쇠, 지갑, 세금 고지서 등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안나 한참 만에 찾는다 △전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자세한 부분들은 기억하기 힘들다 △기억력이 자꾸 감소하는 것 같아 메모를 하면서 가능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에 반해 경도인지장애는 △며칠 전 들었던 이야기를 잊어버려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귀띔을 해줘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기가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을 모르거나 부인한다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나빠진다 △과거 기억에 비해 최근 기억이 현저히 나빠진다 △전화 왔다는 내용을 전해주지 않는다 △돈 계산을 잘못한다. 거스름돈을 줄 때 실수한다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기억력 향상과 경도인지장애를 예방하려면, 일상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취미 생활과 독서를 많이 하거나 매일 일기를 쓰고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읽는 등 두뇌활동을 활발히 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알맞은 운동을 계속 하고 체중을 관리하면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금연을 하고 적극적인 태도와 기분 좋은 마음가짐으로 생활해야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고지혈증·비만 등 성인병이 있다면 치료를 최대한 빨리 받아 합병증을 막는다. 취미생활로 세밀한 손동작을 필요로 하는 서예, 자수, 그림그리기 등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억력 저하나 경도인지장애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치료법은 없다. 다만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치료제로 쓰이는 항치매약물이 치매로 진행되는 것을 늦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억력 향상과 집중력 높이는 방법
ㅇ 한번에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라
ㅇ 일의 우선순위 목록을 만들라
ㅇ
ㅇ 작업환경을 쾌적하고 안락하게
ㅇ 집중력을 방해하는 물건을 치운다
ㅇ 충분한 수면을 취해 머리를 쉬게 한다
ㅇ 균형잡힌 영양이 공급되는 식사를
ㅇ 시간당 10분 등 계획된 휴식을 갖는다
ㅇ 주의 집중력도 연습을 해야 완벽해진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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