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복지재정이 현재 추세를 이어간다면 그리스·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형’ 재정경로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고령화로 경제는 저성장에 접어들었지만, 복지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재정이 파탄난 남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유럽 등 복지 선진국이 복지재정을 확대할 당시에는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이 뒷받침됐지만, 한국은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복지지출을 유지하려면 국민부담률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선임 연구위원은 20일 펴낸 ‘사회보장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정책제언’에서 “한국의 최근 지출과 부담 추이, 사회보장재정추계 자료를 고려할 때 복지지출·부담의 이행경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아닌 남유럽 국가 수준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A8면
원 연구위원은 이 연구보고서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중장기전략위원회 주최로 서울 대한상의에서 열리는 ‘고령화·저성장 시대, 우리는 준비돼 있는가?’ 정책 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매일경제가 후원하는 이번 정책세미나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8개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한다.
보사연은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이를 감당할 재원이 같은 수준으로 증가하지 않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에 도달했던 당시 주요국들은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와 반대의 양상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1980년 복지지출이 GDP대비 20%에 도달했는데, 그로부터 직전 5년간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0.3%였다. 미국·영국의 20% 도달 시점은 2012년으로, 그로부터 5년 전 경제성장률은 2.64%로 조사됐다. OECD 국가들의 20% 도달시점(2009년) 직전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5.6%였다. 하지만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20%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203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 초반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1년 기준 한국의 복지지출 비중은 9.1%다.
경제성장이 어렵다면 국민 개개인의 부담으로 재정을 확충해야 하지만, 한국은 이 또한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조세저항이 유독 강하기 때문이다.
보사연 분석에 따르면 주요국들은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시점에 국민부담률이 일제히 상승했다. 국민부담률은 국민들이 1년 동안 낸 세금과 국민연금·의료보험료 등 각종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총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복지지출이 GDP의 20%에 달했던 시점을 기준으로 국민부담률을 살펴보면, 북유럽은 직전 10년 평균 38.5%에서 5년 평균 40.1%로 상승했고 일본은 26.9%에서 27.7%로 올랐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011년 25.9%에서 큰폭으로 상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국민부담률과 복지지출 추이를 분석해보면 그리스·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경로를 그대로 밟고 간다는 게 보사연의 분석이다. 복지지출이 GDP의 24.4%에 달하는 그리스의 국민부담률은 32.2%에 불과하고, 포르투갈의 복지지출 비중은 GDP의 25%에 육박하지만 국민부담률은 33% 수준이
원 연구위원은 “복지수준의 증대가 정치적 이슈화되고 있지만, 경제적 여건은 OECD 국가에 비해서 어려운 상황에서 복지지출 증가가 진행된다. 높은 조세저항으로 재정확장으로 복지수요를 충족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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