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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주목한 ‘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 3D 프린터. 이 3D프린터를 통해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CEO가 있습니다. 데스크탑 3D프린터로 세계 1위를 노리는 (주)로킷 유석환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놀라운 이력들을 뒤로하고 유석환 대표가 3D 프린터를 주목한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3D프린터 개발부터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강연, 혁신적인 가격으로 3D프린터를 상용화하기까지. 세계 1위를 향해 달리고 있는 ‘3D프린터 전도사’ (주)로킷 유석환 대표의 성공비결을 성공다큐 최고다(최고 경영진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에서 만나보았습니다.
Q. 경력이 화려하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대우에서 20년 일하다 나와 다국적 기업에서 부사장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총괄했었습니다. 하지만 유리 천장을 느끼고 2006년 다국적 기업을 퇴사했죠. 그리고 다음 들어간 곳은 셀트리온 헬스케어 대표 자리였습니다. 다국적 기업에서 일할 땐 다른 회사를 구조조정 하는 일이 있어 정신적으로 힘든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없이 일할 생각으로 셀트리온에 들어갔죠. 하지만 3개월 만에 그 꿈은 깨져버렸습니다. 당시 셀트리온은 대행 생산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1명이었던 고객이 내수 생산을 한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며 고난은 시작되었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저는 바이어 약 개발 계획서 하나를 들고 120개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비전을 팔아야 한다.’ 이 믿음 하나로 투자를 받았고 회사를 살릴 수 있었죠.
Q. 전혀 다른 분야의 3D프린터, 어떻게 주목하게 된 건가요?
120개국을 돌며 비행기 200만 마일리지가 쌓여갔습니다. 무리한 일정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술도 안 먹는데 간이 나빠지더라고요. 결국 2011년 건강악화로 회사를 나와야했죠. 그렇게 회사를 나오고 6개월 동안 산만 탔습니다. 산에서 지내니 건강이 점차 회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건강이 회복되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까지 경험한 교훈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국민대에서 국제 경영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강연을 하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겁니다. 반면 열심히 공부하는데 취직은 너무 안 되고요.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된 거죠. 그 해결 방안 중 하나로 3D프린터를 주목하고 이걸 상용화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경재가 살아나려면 R&D가 발전해야하고 3D프린터는 발전의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죠.
Q. 당시는 3D프린터가 알려지지 않았던 때인데, 어렵진 않았나요?
어려움이 많았죠.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3D프린터를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으니까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3D프린터를 개발했지만 팔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몇 없는 직원들과 팀을 나눠 길에서 3D프린터를 전시하고 팔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영하의 날씨에 눈이 오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3D프린터가 굳어 오작동이 되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날씨는 춥고 사람들은 3D프린터를 모르니 구경도 하지 않고. 그러다 며칠 지나지 않아 오바마 대통령이 3D프린터를 언급하며 3D프린터가 주목되기 시작했고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죠. 3000만원이 넘는 기존 3D프린터와 다르게 저희 제품은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저렴했죠.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 등에서 구매 문의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7~8개월 만에 월 100대가 넘게 팔 수 있었죠.
Q.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목적이 3D프린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시작했기 때문에 비싼 가격으로 판매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3D프린터를 사용하며 R&D가 성장하기 위해선 가격 부담이 커선 안 되겠죠. 그리고 해외 3D프린터 회사의 갑의 횡포가 너무 심했습니다. 300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판매하며 에프터 서비스부터 재료가격까지 좋지 않았죠. 한국 R&D 발전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큰 부담 없이 3D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Q. 계속해서 발전된 3D프린터도 개발하고 있나요?
끊임없이 3D프린터를 개발하고 있죠. 저희가 이번 신제품으로 주목하고 있는 3D프린터는 세계 몇 없는 ‘초콜릿 3D프린터’입니다. 세계적으로 40조원이 넘는 초콜릿 시장을 노리고 개발한 거죠. 국내에서 초콜릿 3D프린터를 개발한 건 저희가 최초일 겁니다. 그것 외에도 저희는 200도에도 녹지 않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도 개발했죠. 이번에는 바이어 경력을 살려 바이어를 3D프린터를 접목시켜보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국 어디든 괜찮은 소재가 있다고 하면 찾아가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기업과 우리가 합작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요. 3D프린터의 발전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Q. 강연까지 다니며 ‘3D프린터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계시던데?
그것도 예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직접 찾아가 3D프린터 강연을 했다고 하면 지금은 강연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강연 문의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3D프린터에 주목하고 있고 그 가치를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연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도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 한 것을 얘기하니 흥미도 낮았고 이해가 떨어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흥미로워하는 사람도 많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3D프린터를 보기 위해 강연장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 굉장히 뿌듯합니다.
Q. 해외에서도 3D프린터는 큰 이슈인데, 해외에서 ‘로킷’을 찾는다고?
이번에 중국 바이어들이 저희 회사를 찾아왔죠. 중국 외에도 저희 제품을 찾는 나라는 많이 있습니다. 한국 1위 기업이고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으니 주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기술을 따라가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독자적인 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이번에 개발한 초콜릿 3D프린터도 찾고 있는 해외 시장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앞으로의 방향성을 읽고 로킷을 창업할 때부터 중국인제들을 채용했었습니다. 최근에 해외 전시회도 많이 하면서 더 많은 해외 시장에서 주목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세계 데스크탑 3D프린터 1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고요. 지금까지 성장한 것도 빠른 성장이라고 말들은 합니다. 하지만 3D프린터 시장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앞으로의 성장이 더 빠르지 않을까요. 어려움보다는 앞으로의 희망과 성장에 대한 기대로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