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위기’ 시대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식물을 벼랑으로 몰고 있다. 인간이 문제다. 유전자에도 손을 댔다. 물러지지 않는 토마토, 제초제에도 죽지 않는 콩 등과 같은 ‘유전자변형작물(GMO)’은 커지는 사람들 불안감 만큼이나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으면서 환경변화에 강한 식물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고 있다. 역시 유전자를 건드린다. 다만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GMO와 달리 자연계에서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인간이 원할 때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유전자교정식물(Genome editing plant)’이다.
모든 생물은 가끔씩, 무작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돌연변이란 생물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DNA가 어떤 이유에 의해 갑자기 변하고 이것이 후대에 유전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물론 여러 동·식물 진화의 ‘재료’가 돼 왔다. 만약 가뭄에 견디지 못하는 식물 유전자 일부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물을 조금만 흡수해도 잘 자랄 수 있게 된다면 이 돌연변이 식물은 지구온난화 영향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개체수가 많아질 수 있다. 환경에 맞서 ‘진화’한 셈이다.
사실 과학계에서는 이전부터 이런 돌연변이를 일으켜 육종을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많았다. 김상규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위원은 “식물에 방사선을 쪼여주거나 화학약품을 처리해 DNA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있었다”며 “다만 이런 육종 변화는 정교하게 DNA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든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가위’에 주목했다. DNA는 염기들이 배열된 기다란 끈 두 개가 나선형으로 꼬여있는 이중나선구조 형태다. 잘라내고 싶은 특정 염기서열에 결합할 수 있는 RNA를 만든 뒤 이를 DNA에 결합시킨다. DNA를 구성하고 있는 끈 두 개 중 하나의 끈에 연결한 RNA로 인해 DNA 이중나선구조가 풀리게 되고 RNA에 있는 효소가 결합한 부위를 자른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원하는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잘라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가위 기술을 식물에 적용,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정 기후에 반응하는 DNA를 잘라버리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후변화에 적합한 식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밀’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잘라 ‘흰가루병’에 저항성을 가진 밀을 개발,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자연에서 무작위로 나타날 수 있는 돌연변이를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꾼 대표적 사례다.
유전자교정식물은 GMO와 달리 안전성 검사도 필요 없다. GMO는 감자와 토마토를 결합시킨 ‘포메이토’ 처럼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식물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인간에게 해롭지 않은지 평가하는 심사를 거쳐야 한다. 반면 유전자교정식물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재현한 것
하지만 이 역시 인위적 돌연변이라는 점에서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김 연구위원은 “유전자교정식물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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