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달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사실상 '십상시 모임'은 없었고, 정윤회 씨와 비서관 3인방이 국정에 개입한 정황은 없다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문건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시중에 풍문으로 떠도는 '찌라시' 문건에 불과했다는 뜻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 예결위 오찬 모두발언(7일)
- "한 언론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를 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일방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마시고,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지만, 언론에 나온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이 지난해 언론에 보도되면서 박관천 경정이 풍문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고, 이때 접촉한 이는 박 모 전 지방국세청장입니다.
박 전 청장은 박 경정에게 정윤회 씨가 청와대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얘기를 해 준 모양입니다.
박 전 청장은 이 얘기를 그저 시중에 풍문으로 떠돌던 것이라 했는데, 박 경정이 이를 십상시 모임으로 소설을 썼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십상시 모임의 최초 발설자는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큽니다.
검찰이 정윤회 씨와 비서관 3인방의 통화기록을 한 달치만 조사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적어도 십상시 모임의 증거는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정윤회 씨는 굉장히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정윤회 / 어제 오전 검찰 출석 당시
-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또 그 불장난에 춤춘 사람이 누군지 다 밝혀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국정 운영 계획과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개입 의혹설이 있는데 어떤 입장이십니까?)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 인터뷰 : 정윤회 / 오늘 새벽 귀가 중
- "(불장난에 춤을 춘 배후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 (불을 지른 사람은 누구라고 보시나요?) 그것도 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세요."
정윤회 씨의 말을 들어보면 찌라시 문건을 만들고 엄청난 불장난을 한 사람 또는 세력을 마치 알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누구일까요?
청와대는 조응천 전 비서관을 겨냥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조응천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의 이름을 딴 '양천모임' 또는 '7인 모임'에서 찌라시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이 모임에는 조 전 비서관 외에 박 경정과 오 행정관, 전직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고모씨, 박지만 EG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전모씨, 언론사 간부인 김모씨, 대검 수사관 박 모씨가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박지만 회장의 측근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불장난 세력의 중심은 박지만 회장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나 박지만 회장은 물론 이런 모임이나 이런 시선에 대해 사실이 아니며 굉장히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십상시모임도 그렇고 양천모임도 그렇고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어쩌면 이번 정윤회 문건 파문은 그저 이 정도 수준에서 덮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끝난 것일까요?
수사는 끝나도, 그 여진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 진동은 새누리당에서도 느껴집니다.
▶ 인터뷰 : 이재오 / 새누리당 의원(12월11일)
- "현 정권이 옛날 그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 그중에서도 유신독재 권력에 대한 향수. 뭐 이런 생각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이 정권이 요즘 하는 것 보면 권력의 독점을 넘어서 권력 사유화하는 게 아닌가. 몇 가지 말을 보면 특히 이번 정윤회 소위 십상시 사건 보면 대통 해야 할 말씀 중 이게 아니다. 예를 들면 청와대 실세가 진돗개라는 등. 국민들이 듣기에 어떻게 생각하겠나. 또 문건이 찌라시 모아놓은 거라는 등. 이건 권력 사유화한 게 아니고는 대통령 자리에서 나올 수 없다."
유신 독재 권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거나 권력의 사유화를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강도가 센 발언입니다.
개헌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과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에 화가 났기에 이런 발언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재오 의원은 박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의원은 정윤회 씨에 대해서도 "사람이라면 적어도 '시끄럽게 해 미안하다' 정도 이야기는 하고 불장난이든 물장난이든 말을 해야지, 이런 게 총체적으로 제왕적 통제의 적폐"이다라고 지적햇습니다.
이재오 의원은 오늘 발언 말미에 본인이 야당인지 여당인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고, 야당 의원은 이쪽으로 오시죠 라고 대꾸했습니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임할 모양입니다.
찌라시 문건의 여진은 해외에서도 느껴지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27년간 유지되어 온 한국의 언론 자유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이 서울의 언론 전문가로 인용한 '뉴 패러다임'의 피터 벡은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 아버지가 쓴 대본을 이어받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는 찌라시 문건임이 밝혀졌는데도 이런 비판을 받는다면 억울해할지 모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서운해할 수 있고, 혹여 그 뒤에 어떤 세력이 있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돌
이런 비판은 진실 여부를 떠나 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