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택가 골목. 벽은 물론 전봇대마다 청약통장을 산다는 불법거래 광고가 부쩍 늘었다. 한 전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보니 자격 조건을 묻는다. “청약종합저축에 5년간 600만원, 무주택세대주기간 5년 이상, 가족 4명”라고 답하니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통장금액에 400만원을 더 얹어서 사겠다”며 만나자는 답변이 돌아온다.
보통 청약통장은 대략 500만원에 거래된다. 20년을 꼬박 채운 통장은 몇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중개인들은 청약저축, 청약예금, 청약종합통장을 통장주에게 웃돈을 주고 사들인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중개인은 사들인 청약통장으로 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될 경우 분양권을 웃돈을 받고 전매해 차익을 남기거나, 직접 청약하지 않을 경우 청약통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들은 범법행위에 따른 처벌의 무서움보다는 ‘돈’의 달콤함을 쫒는다.
↑ [지난 9월 26일 위례신도시에 지어질 한 아파트 견본주택 앞에 자리잡은 떴다방 모습.] |
#얼마 전 139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던 위례신도시의 한 견본주택(복정역 인근) 앞. 파라솔 아래 간이 테이블에서 불법영업을 하는 ‘떴다방’ 30여개가 ‘분양권 전매 전문’ 등의 문구를 붙이고 상담에 열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떴다방 관계자는 “이미 웃돈이 7000~8000만원 정도 붙었고 지금이라도 사는 게 좋다”고 말한다. “위례신도시 민영아파트의 전매제한기간은 1년이지만 매도자와 공증을 해두면 문제될 게 없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곳에서 불법전매는 당연하고, 실제 거래도 종종 발생했다. 떴다방 관계자는 “분양물량의 20~30%는 이런 방식으로 거래된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기간(1년) 내에 불법전매가 횡횡하고 있다. 이는 비단 위례신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건설업체는 ‘떴다방’이 편안(?)하게 영업할 수 있도록 견본주택 앞 일부 공간까지 내주고 있다.
떴다방은 정부의 단속대상이다. ‘공인중개사법 제13조2항’에 ‘이동이 용이한 임시중개시설물을 설치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건설업체들은 떴다방이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있느냐를 보고 분양 성적을 점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떴다방이 들어차면 되레 ‘대박단지’라고 홍보에 열을 올려 자료를 뿌리기까지도 한다.
떴다방은 청약에 당첨된 사람에게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매입, 웃돈을 얹어 재판매하는 과정을 통해 분양시장을 교란시킨다. 일명 ‘돌리기’라는 과정을 거치면 프리미엄은 과도하게 오르게 되고 중간 마진은 결국 떴다방 업자들이 챙기는 식이다.
불법은 떴다방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분양권에 웃돈이 몇 천에서 억 단위까지 붙자 양도세 취득세를 아끼기 위해 거래가격을 낮춰 적는 ‘다운계약서’도 늘어났다.
정부의 9.1대책 등 부동산 규제완화로 아파트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와 동시에 당첨된 분양권이나 청약통장을 몰래 사고파는 등 각종 불법도 난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례신도시, 동탄2신도시, 판교 등 인기지역의 분양권은 벌써 억대의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기도 하다.
매도자 우위시장이 확실히 자리 잡은 요즘, 전매기간이 지난 단지들도 매수인이 양도세를 내는 조건부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매수인이 웃돈에 양도세까지 내야하는 이중 부담을 안는 셈이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은 “불법 청약통장 거래, 전매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며 “적발되면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고 원장은 이어 “과거 판교와 세종시에서 그랬듯 사후에 적발돼 처벌받는 경우도 많다”며 “향후 집값 상승시 양도세 부담이나 소유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전매제한 이후에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부터 2014년 6월까지 총 1084건의 다운계약서 작성이 적발되어 과태료 42억1200만원이 부과됐다. 한해 평균 227건이 적발되는 셈이다.
↑ [자료 김태원 의원실] |
연도별로는 2010년 157건, 2011년 223건, 2012년 267건, 2013년 261건으로 최근 4년 동안 66.2%가 증가했다. 올해는 6월까지 벌써 176건이 적발됐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18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부산 160건, 경남 116건, 경기 113건, 경북 81건, 충북 80건, 서울 71건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김 의원 측은 “청약통장 불법거래의 경우 현재 청약은 금융결제원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진행된다”며 “과거에는 현장에서 청약해 본인여부 확인 등을 통해 불법청약을 비교적 쉽게 잡아낼 수 있었지만 현재는 사실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포통장 등 음성적으로 거래되다 보니 사실 지자체와 경찰이 합동단속반까지 구성했지만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4월부터 2014년 3월 현재까지 청약통장을 불법거래하다 적발된 건수는 고작 7건에 불과했다.
한편 부동산 투기 등으로 지난 7년 동안 추징세액이 25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부동산 투기, 양도소득세 탈루로 부동산 투기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건수가 총 5243건으로 조사됐다. 국세청은 이중 1502건(28.6%)을 과세로 활용해 2510억원을 추징 고지했다.
또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8월 현재까지 부동산투기사범 4만8346명을 적발했다. 한해 평균 1만505명이 적발되는 셈이다.
김 의원은 “떴다방과 다운계약서, 청약통장 불법거래 등이 다시 활개를 치는 이유는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한탕을 노리는 불법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단속의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1년 청약통장 불법매매, 분양권 불법전매 시 처벌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지만 이도 유명무실하다. 단속주체가 불분명하고 단속건수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부동산 침체가 오랜 기간 계속되면서 불법거래가 이뤄져 서로 눈감아 주는 식으로 덮어버리고 있는 것.
김 의원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로 거래가 활성화되자 실제 그 집에 살려는 실수요자보다는 전매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수요자
또 김 의원은 “서민 주거안정을 도모하는 공익적 성격이 큰 정부의 정책의 수행과정에서 충분한 사전검토와 지속적이고 엄격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조성신·이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