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월호 사고로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중국 노선 확대가 항공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몇년간 잇따라 항공사고를 냈지만 이번 노선 배분에서는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사고 조사 완료 전까지는 항공사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국토교통부 규정이 5년 전에 개정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 논리라면 청해진해운도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고가 난 인천-제주 노선을 그대로 운항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2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중국간의 항공회담을 통해 중국 노선이 기존 45개 노선, 주 426회에서 62개 노선, 주 516회로 대폭 늘어나고 확대된 노선 운항권이 이르면 이달 말 국내 항공사들에게 배분될 예정이다. 이번 항공회담은 3년 만에 열린 것으로 미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은 이미 항공자유화가 돼 있어 항공업계에서는 노선 배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최근 몇년 동안 잇따라 항공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도 신규 노선을 배분 받을 자격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011년 화물기 추락 사고, 2013년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를 냈고 최근에는 엔진 이상 경고를 무시하고 목적지까지 그대로 비행한 사실도 적발됐다.
하지만 현행 규정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노선 배분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해양부령인 '국제항공운수권 및 영공통과 이용권 배분 등에 관한 규칙'은 항공철도위원회 발표를 통해 항공사의 귀책사유가 입증된 항공기 사고만을 항공사 평가에 반영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항공기 사고 조사에는 2~3년 가량이 걸린다. 지난 2011년 발생한 제주 화물기 추락사고도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사고 조사 결과는 오는 7월경 나올 전망이다.
항공사가 대형 사고를 내면 일단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 해당 항공사와 기종에 대해 정밀 검사를 진행한 뒤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결론이 나면 그때 정상 운행하는 것이 일반 상식이다. 하지만 현행 규정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가정한 뒤 조사가 다 끝난 뒤에야 불이익을 주는 식이다. 오늘 비행기가 추락해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해도 내일 신규 노선을 배분받아 사업을 확장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가장 우선시돼야 할 안전 부문의 배점도 지나치게 적다는 비판이다. 전체 100점 만점 가운데 항공사 평가의 안전 관련 평가항목의 총점은 30점으로, '이용자 편의성'(30점)과 같고 '시장 개척 노력 및 운항 적정성'(40점)보다 적다.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10점)는 '운임 인하 및 인상 제한 효과'(10점)와 똑같이 취급되고 있다.
규정이 이렇다 보니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3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를 내고도 국토교통부로부터 '2013년 항공교통서비스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해 최근 당국이 평가 재검토에 들어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부터 국토교통부의 규정이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7년 대한항공이 괌에서 추락 사고를 낸 뒤 정부 당국은 1999년 '사고 항공사에 대한 노선 배분 및 면허 등 제한 방침'을 마련했다. 이 규정은 '사고 조사가 장시간에 소요되는 경우에 대비해서 사고 발생 직후부터 일정 기간 동안 국제선 노선 배분 및 신규 면허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안전 위주의 내실 경영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2009년 개정을 통해 항공사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시점이 사고 발생 직후에서 조사 완료 이후로 은근슬쩍 후퇴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지난 1997년 괌 사고와 1999년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 화물기 사고 이후 해당 노선 운항을 정지당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지금도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 운항을 계속 하고 있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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