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국내 레이싱 모델계의 얼굴 마담격이었다. 2000년대 중반 방송가로 활동 무대를 옮겼지만 서서히 그 이름은 대중들에게 잊혀져갔다.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플로리스트라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모델 활동에는 나이라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모델 활동을 하면서도 모델 이후의 삶을 준비하려 하고 있었요. 꽃으로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지금은 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연실 보니비스 플라워 대표는 자신이 플로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1999년 패션 잡지를 통해 데뷔했다. 그냥 아르바이트처럼 가볍게 시작한 일이 이른바 대박이 났다. 데뷔 2년차이던 2000년 BMW 모터쇼의 메인 컨셉트카 모델 자리를 꿰찬 이후 꾸준히 국내 톱 레이싱 모델 자리를 지켰다. 한달에 몇억씩 벌던 시절이었다. 2006년부터는 방송과 영화에도 진출했지만 한계를 느끼고 연예계 일을 접었다.
"방송 일을 하려면 피가 달라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예쁜 것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27살때 느꼈어요. 그래서 빨리 포기를 한 거죠."
그렇게 3년여의 방송 생활을 정리하고 2009년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연수도 2년이나 다녀왔다. 다시 국내로 돌아와 지인들과 플로리스트 사업을 시작했다가 지난 4월 독립했다. 지금의 수입은 잘 나간 때에 비하면 몇십 분의 일, 몇 백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다. 대중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그립지는 않을까.
그는 "어린 나이 때는 즐길 수 있었고 행복감을 느끼면서 일했죠. 하지만 나이에 맞는 일이란 게 있죠"라며 "지금 수입은 그때보다 적지만 더 큰 자아실현, 더 큰 가치실현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더 만족스럽고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모델들은 모델 에이전시 사업, 인터넷 쇼핑몰 사업 등 모델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일하거나 주부로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처럼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물론 과거 레이싱모델 활동 경력이 사업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현재 강남 수입차 매장을 중심으로 영업을 펼치고 잇따. 아무래도 이 바닥에서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하다보니 눈치가 빠르다는 게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하던 모습을 기억해주셔서 많이 환영해줍니다. 12년 전에 모터쇼를 담당하던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가 지금은 사장님이 되셨더라구요."
사실 플로리스트 사업이라는 게 녹록한 환경이 아니다. 이 시장도 공급 과잉 상황이다.
홍 대표는 "10년 전 쯤에는 플로리스트가 돈을 잘 벌었지만 그 이후 플로리스트가 너무 많이 생기면서 지금은 덤핑이 있을 정도로 가격 경쟁이 심해요"라며 "사실 파티나 웨딩 같은 쪽이 돈이 되는데 이 시장은 호텔의 직계 가족들이 다 장악하고 있어서 우리 같은 소형업체가 들어가는 게 아주 힘들죠"라고 토로했다.
그는 꽃바구니 같은 소소한 일 대신 매장을 상대하는 프리미엄 전략을 펼치고 있다. 가격은 다소 비싸더라도 서양난이나 화기(花器)를 최고급으로 하고 관리도 더 세심하게 하겠
그는 "다들 플로리스트가 실력 차이가 얼마나 나겠냐 하겠지만 막상 꽃을 전시하면 소비자도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라며 "앞으로 자동차 매장 뿐만 아니라 의류 매장, 백화점 등으로 확장해서 거래처를 연말까지 100곳으로 늘리는 게 목표에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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