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강남역 사거리 빌딩 지하의 한 카페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진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젊은이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한다. 피아노가 멈추자 다시 대화의 꽃을 피운다. 활기에 넘쳐 대화를 나누는 젊은이들은 바로 청운의 꿈을 품고 창업을 위해 모인 이들이다. 피아노 연주자는 배우 지현우의 형이자 유명 작곡가인 지현수다.
◆강남역 대학생들 "요즘 뜨는 아이디어팩토리 가볼까?"
서울 강남역에 위치한 빌딩의 지하 공간이 최근 젊은이들에게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아이디어팩토리'다. 가볍게 커피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 주요 관심사를 놓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 다같이 노트북을 꺼내 자료를 검토하고 보고서를 쓸 수 있는 공간, 창업 아이템을 놓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까지 창업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아이디어팩토리'가 만들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올해 1월 문을 열었으며 오픈 이후 변변한 마케팅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문한 대학생들과 창업 준비자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어느새 강남역 명소로 떠올랐다. 포탈 네이버에 '아이디어팩토리' 연관 검색어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부담없이 만나 편하게 일할 수 있고, 그리고 가열찬 토론 뒤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하는 배려가 방문자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윤현정(34·사진) 보고앤코 대표는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을 컨셉트로 잡았다고 밝혔다. 딱딱한 사무실을 벗어나야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평소 지론 때문이다. 윤 대표는 "전세계에서 업무 공간에 파티션을 두는 문화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 하에 아이디어팩토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 아이디어팩토리의 미팅 룸.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해 팀원간 의견을 나누며 작업을 할 수 있다. |
창의성에 대한 배려는 아이디어팩토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이후 '창조경제' 바람이 불고 창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창업자나 1인 기업 운영자, 프리랜서들을 위한 공간은 다른 곳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토론, 그 이후를 위한 배려까지 갖춰진 곳은 흔치 않다. 바로 이 점이 아이디어팩토리의 차별점이다.
아이디어팩토리 내에는 마치 암실과 같은 공간이 있다.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는 바로 그 곳이다. 내부에는 피아노 한대와 헤드폰이 갖춰져 있다. 외부와 차단된 채 피아노 연주를 즐기며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곳은 배우 지현우의 형이자 유명 밴드 넥스트의 키보디스트, 작곡가인 지현수씨가 일주일에 2~3회 밤에 방문한다. 그는 이곳에서 조용히 음악을 연주하며 작곡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피아노를 칠 때면 카페 손님들도 함께 음악을 감상한다. 가끔 박수도 터져나온다.
다른 곳에서도 휴식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룸'이라고 명명된 곳에는 키보드와 함께 기타 등 다양한 악기들이 갖춰져 있다. 보드 게임도 구비돼 있다. 열띤 토론을 진행하다 머리를 식히는 공간이다.
특이한 곳은 또 있다. 일에 몰두한 여성 창업자들을 위한 장소다. 입구쪽에 간단하게 화장을 할 수 있는 메이크업 룸이 갖춰져 있다. 윤 대표는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외모에 신경쓸 겨를이 없지 않나"며 "일도 일이지만 연애에도 지장이 없도록 하자는 배려"라고 웃으며 말했다.
◆감성적 접근이 주효…여성 특유의 배려도
이처럼 아이디어팩토리는 기존 창업지원센터와는 다른 배려가 두드러진다. 바로 윤 대표의 경험과 여성 특유의 감성적인 접근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윤 대표는 경희대 의대에서 수학하다 뜻한 바 있어 멀티미디어학과로 옮겨 졸업한 수재다. 학교를 졸업한 뒤 밸류웍스에서 컨설팅을 담당하다 삼성전자 디지털솔루션센터(DSC)에서 파견 형태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일할 당시 전체 조직 300명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여성이 차장 한명에 불과했다며 그 특유의 갑갑한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여자 특유의 감성이 조직화, 서열화된 분위기에서 발휘될 리도 만무했다.
결국 윤 대표는 창업의 길로 나섰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뒤 휴 크리에이티브라는 IT 전시 회사를 설립한 것. 3D 영상, 홀로그램, 대형 디스플레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주어진 콘텐츠를 가장 아름답게, 가장 효과적으로 노출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분야다. 따라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감성적인 접근이 절실했다. 그는 직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리고 팀간의 협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가 아이디어팩토리에 녹아 있다고 밝혔다. 엔터테인먼트 룸이나 메이커업 룸 등도 그의 일환이다.
그가 애초부터 창업지원센터라는 꿈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휴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며 젋고 독자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이들에 대한 지원이 생각보다 열악함을 깨달았다. 지원만 잘 되면 이들의 창의성이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갖게 됐다. 이를 위해 보고앤코를 설립하고 아이디어팩토리를 만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윤 대표는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한발짝 가다가 넘어지고, 다음에는 세발짝 가다가 넘어지고, 다음에는 다섯발짝 가다가 넘어지더라"라며 "다섯발짝 가다가 넘어진 사람들이 모이면 처음 걸음마를 떼는 사람들도 세발짝은 걷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아이디어팩토리로 이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올 8월이나 9월께에는 홍대에 아이디어팩토리 지점을 낼 생각이다. 유동인구가 많고 비슷한 장소가 곳곳에 배치된 강남역에서도 충분한 성과를 거둔 만큼 홍대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이어 강남에 지점 한 곳을 더 낸 다음 내년에는 가로수길이나 삼성역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윤 대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려면 공간 자체가 이를 배려해야 한다"며 "취업 등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때로는 편안하게, 때로는 가열차게 자신이 가진 것을 풀어놓고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매경닷컴 김용영 기자 / 사진 = 유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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