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3월17일 오전 11시30분, 간부회의를 마친 팀장이 갑자기 호출을 합니다. 그 순간 기자는 ‘아차!’ 합니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분명 점심을 같이 먹자란 얘기는 아닐 것 같고, 업무 지시가 떨어질 확률이 99%였기 때문이죠. 역시나 팀장은 긴급 취재 명령(?)을 내립니다.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오진암을 파보랍니다. 기자는 ‘요정’이란 말에 위치(witch)나 엘프(elf)를 먼저 떠올렸다 이내 현실을 직시한 후 폭풍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 당대 최고 요정의 흥망성쇠 = 오진암(梧珍庵). 실로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1953년 서울시에 최초로 등록된 식당이자, 1970~80년대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손꼽히던 곳이었고, 그 이전에 조선시대 말기 내관 출신 화가인 이병직이 살았던 집이기도 했습니다.
오진암은 1972년에 위세를 가장 떨쳤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박정희 정권의 실세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7·4 공동성명을 이곳에서 논의했습니다. 물론 70~80년대는 워낙 요정정치가 판을 치던 시기였기에 다른 요정에도 굵직한 인사들이 찾았지만 오진암에 이후락 김두한 등 정·관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잦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도 있더군요. 당시 요정에서 양주를 파는 게 금지됐는데, 어느 날 단속반이 들이닥쳤답니다. 단속원이 ‘영업정지’라는 엄포를 놨는데, 오진암 직원이 대꾸하기를 ‘이후락 부장이 와 물으면 당신 이름을 대겠다’고 했답니다. 결국 벌금만 물고 영업을 계속했다고 하네요. 오진암이 당대 최고의 요정 중 하나였다는 방증이겠지요.
고위층에 사랑받던 오진암도 끊임없이 구설에 시달립니다. 바로 기생관광 때문이죠.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외국 관광객 때문에 ‘기생관광 외화벌이가 웬 말이냐’란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어면서 오진암은 룸살롱과 고급주점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등의 유흥업계 변화에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결국 오진암은 2010년에 철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 무계원으로 재탄생한 오진암…전통문화 알림이 역할 ‘기대’ = 서울시와 오진암이 자리했던 익선동의 관할구청인 종로구는 오진암을 철거할 때 문화재로서 보존가치가 있는지 다방면으로 검토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오진암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호텔을 짓기로 한 사업자와 종로구가 보존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2012년 2월에 오진암의 대문과 기와, 서까래 등의 자재를 그대로 옮겨 공사를 시작해 오는 20일 부암동 주민센터 뒤편에 무계원(武溪園)이란 이름의 전통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이릅니다.
사료로만 남을 뻔했던 오진암이 어떻게 변했을까란 궁금증을 안고 18일 오전 사진기자와 함께 부암동을 찾았습니다. 미세먼지 탓인지 그 많던 하늘길 도보 여행객들이 자취를 감춘 채 스산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부암동이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고운 자태의 한옥 한 채가 기자들을 반겼습니다. 아직 공식 개장 전이라 대문이 닫혀 있어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채와 행랑채 그리고 사랑채 등 세 건물로 이뤄진 공간 가운데로 아담한 마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각사각 하는 자갈과 모래가 깔린 이 마당에는 곧 몽우리 질 오래된 목련나무가 자리해 있는데, 오진암이 이전해 오기 전부터 있던 것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목련나무를 지나면 안채에 오르게 됩니다. 이 안채는 오진암의 것을 가장 많이 활용한 건물인데 대들보와 서까래, 기와 등에서 옛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들보에는 ‘오진암 한옥을 옮겨 짓기’라는 글귀가 굵은 궁서체로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무계원의 관리를 맡은 전덕진(54) 선생님은 “무계원은 오진암이 이전해 복원됐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조선 초기 문화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이야기가 곳곳에 있어 가치를 더 한다”라며 “무릉도원을 방문한 꿈과 흡사해 그 내용을 안견에게 전해 몽유도원도를 완성하게 한 일화나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어 글을 읊으며 활을 쏜 궁터가 바로 이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다양한 전통문화 강의가 더욱 찰 지게 이뤄질 것 같다는 기운을 받았습니다. 무계원에서는 20일 개장을 시작으로 안휘준·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세종시대’와 관련한 인문학 강의를,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통 영정화 최고위 과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도 등 전통문화 체험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무계원 안채의 마루에 걸터앉아 세종과 그의 아들 안평대군이 살던 시대로 ‘타임슬립’ 해보는 상상, 아마도 이곳을 찾게 될 이들이라면 한 번쯤 해봄직 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되지 말란 법은 없을 겁니다. 무계원에서 라면 말이죠.
한동안 무계원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던 전 선생님은 앞으로 더 기대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과거 우리 선인들이 누렸던 옛 궁중 문화를 재해석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문화 수준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에 무계원이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무계원을 한 시간여 둘러보고 나오면서 사진기자가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무계원을 보니 나중에 꼭 한옥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장 기자는 어때?”
저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저도요.”
※ 덧붙이는 말씀 : 부암동을 한 번쯤 찾아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자기 차량을 이용해서 가면 참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주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부암동 주민센터에 10여 대의 주차공간이 있습니다만 빈 공간이 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불법주차하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도로의 폭이 넓지도 않을 뿐더러 수시로 단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암동은 꼭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라 추천합니
[매경닷컴 장주영 기자 semiangel@mk.co.kr / 사진=강영국 기자] 매경닷컴 여행/레저 트위터_mktour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