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기능을 계속 과장해 말하는 사장의 말에 그는 이렇게 한마디 툭 내뱉는다. '국내 최초', '업계 최고','1위 업체'등의 수식어 앞에 그는 더욱 단호하다. 증빙 서류를 제시하지 못해 홈쇼핑 방송의 꿈을 접은 기업도 여럿 있을 정도다.
하지만 증거자료가 뒷받침 된 제품은 1분만에 1억원어치 팔리게 하는 것은 그에게 식은 죽 먹기다. 홈쇼핑 납품업체 사장님들을 울고 웃게 만드는 쇼호스트, CJ오쇼핑의 동지현(42·사진)씨 얘기다.
"소비자들을 대신해 제품을 사용해본다는 점에서 쇼호스트의 책임감은 굉장히 중요해요. 특히 제품의 장점에 대한 근거 자료는 무조건 기업에 요청을 하죠. 자료가 확보됐을 때에만 방송에서 언급하는 게 제 원칙이랍니다."
매회 방송하기 전 PD 및 상품기획자(MD)들과 치밀한 작전 회의를 펼친다는 그는 "쇼호스트들이 생각없이 홍보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너무 철저히 준비하는 탓에 동씨 앞에서 쩔쩔매던 사장님들은 막상 방송을 보면 흐뭇해 한다. '내 새끼' 처럼 귀한 제품 설명을 누구보다도 잘 하기 때문이다. 동씨는 "보통 방송을 하면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스튜디오 안에서 저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어렵게 잡은 방송이니만큼 그 눈빛이 얼마나 애절하고 또 무서운지 얼렁뚱땅 할 수가 없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그는 CJ오쇼핑 내 패션 분야에서는 섭외 1순위를 달릴 만큼 의류, 가방, 화장품 등의 마케팅 실력이 탁월하다. 제품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아도 주문 전화가 밀려들게 하는 비법이 그에게는 따로 있다고 했다.
"최근 사내 판매 신기록을 달성한 베라왕 가방의 경우 방송 중후반까지도 제품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오로지 베라왕 브랜드의 역사와 추구하는 가치 등에 대해서만 얘기를 들려줬죠. 소비자들이 '이제 그만하고 가방을 보여줘'란 항의 전화가 올 때까지 브랜드 얘기만 했다니까요(웃음). 그럼에도 잘 팔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들의 환상과 더불어 가방을 잘 매치시켜주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죠."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샤넬백과 같은 명품 가방을 살 때 가격 대비 기능을 따져보고 사지는 않는다. 가방 안에 주머니가 달려있는지, 또 주머니에 지퍼는 따로 있는지의 여부가 명품 가방 구매에 있어 크게 중요하지 않다.
동씨는 "일일이 명품백을 뒤집어보여주거나 기능을 강조한다면 오히려 소비자들의 사려고 한 욕구가 싹 사라질 수 있다"며 "두루뭉술하게 보여줘도 (명품백이) 팔리는 이유는 브랜드 값이고, 그래서 전 패션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제품 판매에서도 스토리텔링은 유효하다. 동씨는 성공 사례로 한 노트북 방송을 들었다.
"사실 제가 컴퓨터, 자동차 등의 판매는 '쥐약'이에요. 하지만 해당 노트북의 브랜드가 '10년 연속 소비자고객 만족도 1위'라는 데서 착안해 스토리텔링을 했죠. 마침 그 때가 졸업입학 시즌이어서 학생들을 떠올렸고요. 그래서 만들어진 문구가 '초,중,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만 한 브랜드에요, 얘는 사람이 아닙니다'였어요. 어때요? 혹하지 않나요?"
물론 그가 제품의 겉만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고 자부하는 동씨는 "제품을 완벽히 분석해야 비유와 상징을 쓰는 스토리텔링도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쇼호스트의 기본 자질로 제품에 대한 이해력을 꼽았다.
"요즘 부쩍 쇼호스트 선발 면접에 들어가보면 자신이 마치 연예인인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춤추고 노래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당황스럽죠. 홈쇼핑 방송의 주인공은 제품인데 자기가 주인공인냥 행동하는 친구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그래서 그런 장기자랑을 하거나 화장을 더 할 시간이 있으면 제품 설명서 한 자라도 더 보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동씨는 입사할 당시 동기들과 달리 방송 경력이 없다는 점에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항공사 승무원직을 박차고 나와 우연히 홈쇼핑 쇼호스트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 방송은 한참 낯설었던 것.
그는 "심지어 저희 집에는 케이블 방송이 나오지 않아 홈쇼핑 방송을 그 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며 "5차 최종 면접까지 다 합격해놓고도 가슴 졸였던 기억이 크다"고 회상했다.
홈쇼핑 쇼호스트 경력 14년차인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겁이 난다고 동씨는 털어놨다.
"제 밑바닥을 들킬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 모드에요. 하지만 그런 긴장감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것 같아요. 좀 더 깊이 있는 상품 설명을 하면서 '아, 동지현은 뭔가 좀 다르구나'라고 소비자들이 생각해주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씨는 요즘 대학과 기업체에 나가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비롯해 이미지 메이킹, 마케팅 관련 강의을 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한다고 했다. 업그레이드 된 쇼호스트의 모습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매경닷컴 = 방영덕 기자 / 이가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