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를 맞아 소망과 목표를 다지는 새해 첫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공사판 '노가다' 인생 30년 김명수(가명·55) 씨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겨울공사는 끝나 가는데 새 현장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서다. 시장통에 삼삼오오 모여 현장 정보를 나누지만 건설경기가 바닥이라 현장 잡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봉급 한번 제 날짜에 받아 보는 게 소원이야"
2일 만난 일용직 건설노동자 박치수(가명·49) 씨의 이야기다. 일한 만큼 일당을 제 날짜에 받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박씨는 '노가다' 20년 동안 약속한 날짜에 봉급을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툭하면 봉급이 밀린다. 특히 명절 때면 가족 볼 낯이 서지 않는다. 고향 내려가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당장 다가오는 구정 역시 걱정이다. 박씨는 "'쓰메끼리'(일제 때 건설노동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든 관행) 때문에 떼인 25일치 봉급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2일 이른 아침 북창동. 일용직 노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줄담배를 연신 피워댄다. 새벽부터 인근 직업소개소를 찾았다가 일감을 찾지 못하고 남은 '잉여인력'이다. 혹여나 기회가 있을까 미처 발을 떼지 못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0대 청년부터 60대 노인까지 거리를 배회한다. 중국동포로 보이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기자가 1년 6개월 동안 한국은행으로 출근하면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다.
#"희망은 남의 나라 얘기 아닌가요"
올해로 31살을 맞은 정진수(가명) 씨. 대학 졸업 후 2교대 경비원부터 하루 12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는 백화점 판매원을 비롯해 보험설계사까지 열심히 뛰어왔지만, 빚만 1000만원을 떠안았다. 일하면 일할수록 희망이 보이는 게 아니라 절망이 다가온다. 그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불황도 이런 불황은 처음이야"
경기도 일산 한 미용실. 원장 김은정(가명·45) 씨는 어렵게 마련한 보증금으로 미용실을 열었지만 운영할수록 적자다. 가계세 120만원을 내지 못해 보증금을 까먹은 지 오래다. 가계를 내놨지만 미용실 운영을 하겠다는 작자는 나오지 않는다. 권리금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김씨는 "불황도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지표상 경기 회복세가 감지되고 있지만 체감 경기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책상머리에서 볼펜대 굴리는 공무원들에게 현장을 가봤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올해 우리경제가 지난해보다 3.9% 성장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현실은 까마득해 보인다.
일하고도 월급을 제때 못 받는 고용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는 어림잡아 15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비
정부가 경제지표를 보고 경기를 판단하기 보다는 서민들이 실제 체감하는 경기가 어떤 것인지 발로 뛰어 먼저 체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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